자산운용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2006년 이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아성이 흔들리면서 삼성자산운용이 1위 자리(공모펀드 운용액 기준)를 넘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형 펀드에 '몰빵'했던 미래에셋에서 손실을 본 고객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는 반면, 채권과 파생형, 재간접(연기금) 등으로 다양한 투자 상품 구색을 갖춘 삼성은 고객을 꾸준히 불린 결과다.

공모·사모펀드 합하면 이미 삼성에 추월당해

금융투자협회가 올해 1분기 국내 86개 자산운용사별 공모펀드 설정액을 집계한 결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4조4000억원, 삼성자산운용이 22조7000억원으로 1위와 2위의 격차가 최저치인 1조7000억원 수준까지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미래에셋이 26조5000억원, 삼성이 21조8000억원으로 4조7000억원 차이가 났고, 2012년 말(10조9000억원), 2011년 말(12조5000억원) 등 과거엔 격차가 훨씬 더 벌어졌었다.

인사이트 펀드 열풍으로 미래에셋 공모펀드의 설정액이 역대 최고치인 56조2000억원이었던 2008년에는 미래와 삼성의 설정액 차이가 41조원에 달했다. 개인들이 주로 가입하는 공모펀드는 전체 우리나라 펀드시장에서 절반 이상인 56%를 차지하고 있어, 자본시장의 바로미터로 꼽힌다. 사모펀드는 채권형이 많고 기관투자자들이 주 고객이며, 삼성의 경우 대형 보험사·증권사를 가진 재벌 계열사로서 사모펀드 영업력 면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만큼 증권사의 실질 영업 경쟁력을 따질 때는 공모펀드 설정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공모와 사모까지 합친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말 삼성자산운용의 설정액은 40조1000억원(주식형 펀드 비중 27%), 미래에셋은 37조2000억원(주식형 펀드 48%)으로 이미 삼성이 미래를 역전했다. 올 들어선 3월 말 기준 삼성이 41조2000억원, 미래가 35조5000억원으로 역전된 전세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

미래에셋의 위상 추락은 국내 설정액 상위 10개 펀드 중 미래에셋자산운용 상품이 한 개도 없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현재 공모펀드 설정액 1위는 KB자산운용의 'KB밸류밸류포커스(2조4000억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단일 상품 중 제일 규모가 큰 것은 중국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차이나솔로몬(1조1700억원)'으로, 11위에 그치고 있다. 2007년 10월 말 미래가 내놨던 '인사이트' 펀드가 한 달 만에 4조원이 넘는 자금을 모았던 때와는 판이한 분위기다.

투자자 신뢰 상실이 주된 요인

자산운용업계에선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로 투자자들의 신뢰 상실을 들고 있다. 판매 보수가 높은 주식형 펀드에 올인했던 미래에셋이 금융위기로 주가 급락을 겪으면서 투자자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겼던 여파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인사이트 펀드가 2008년 수익률이 -51%까지 떨어졌는데도, 수수료라도 내려달라는 고객 목소리를 외면해 원성을 샀다. 지난해 수익률이 상당폭 회복되자 여태 인내했던 고객들이 대거 환매하면서, 이 회사의 주식형펀드 설정액이 1년 사이 4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삼성은 ETF(상장지수펀드) 등 패시브 펀드(주가 상승률 정도의 수익을 기대하는 펀드)와 채권형·혼합형 등 신종 상품을 발 빠르게 내놓으면서 시장 변화에 따른 투자 리스크를 줄였다. 미래에셋 역시 최근 해외채권형, 하이일드 상품 등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기조와 맞물리면서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해 고객 몰이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앞으로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단기간에 급변한 소비자의 취향을 누가 제대로 읽어내느냐의 싸움이 될 전망이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상무는 "지난달 자산운용사들이 일제히 출시한 소득공제장기펀드만 봐도, 가치주 중심의 밸류·신영·트러스톤 3사(社)에 투자 금액의 70%가 몰렸다"면서 "더는 주식형의 달콤한 단기 수익률로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역설적으로 미래에셋이 인사이트 펀드를 내놨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 지역과 대상을 막론하고 혼합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주겠다던 인사이트 펀드는 당시로선 상당히 선진적이었다. 설계 철학대로만 운영됐으면 좋았을 텐데, 단기 수익에 집착해 중국에 올인했던 게 패착이었다"며 "지금이라도 미래가 '진짜 인사이트 펀드'를 내놓겠다는 자세로 돌아가면 시장 판도는 또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