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물자원공사는 지난달 12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본사 부지를 입찰에 붙였으나 유찰됐다. 지난해 6월부터 총 네 번째의 유찰이다. 하지만 최저 입찰가격(743억원)을 내리지는 않았다.

# 토지주택공사(LH)는 올 1월에만 두 차례에 걸쳐 대구 북구 침산동에 위치한 사옥에 대한 입찰을 실시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두 번의 입찰에서 최저 입찰가격은 129억원으로 변함이 없었다.

공공기관이 지방 이전, 부채 감축을 위한 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2017년까지 총 16조원 규모의 자산 매물이 나온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공공기관의 방어적인 태도 탓에 매각 협상을 진척시키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수 차례 유찰된 매물인데도 가격을 낮추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매각 가격을 낮출 경우 헐값 매각 시비와 함께 배임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배임 가능성에 대한 부담을 해소해 줘야 매각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외에 용도 변경 등 매물의 개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지자체의 규제 완화가 지지부진한 점도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 공공기관들, 유찰 되어도 가격 안 떨어뜨린다

2일 최근 A공공기관의 마포 소재 사옥 매입을 타진했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감정 평가한 금액으로만 매각하려고 한다"며 "시장 여건을 감안한 실제 거래 성사가격보다 높더라도 낮추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지방에 소재한 다른 공공기관의 자산 인수 논의에 참여했던 다른 관계자도 "공공기관들이 자기네의 이익 보장만 요구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공공기관 부채 감축과 관련해 관계부처가 보고한 자료에서 2017년까지 중점관리 대상 18개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 규모는 8조7400억원. 여기에 자산 2조원이 넘어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대상에 포함되는 공공기관(23개)의 자산 매각 계획까지 합산하면 총 자산 매각 규모는 16조원에 달한다.

매각 대상 자산을 보면 3분의 2는 부동산 자산이고, 이 중 상당수는 본사 이전에 따른 건물 매각이다. 특히 지방으로 옮기는 공공기관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이전일로부터 1년 이내에 기존 본사 부동산을 매각해야 한다.

본사 매각을 추진 중인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여건이 좋지 않은데 매물이 쏟아지고 있어 거래가 제대로 성사될 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 매각가격 법적 제한 없는데..공공기관 내부지침엔 ‘감정가 이상으로 팔아라’

현재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관 중 경찰청, 농업진흥청 등 정부 소속기관의 경우 본사 건물이 기한 내 팔리지 않는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산관리공사(캠코), 농어촌공사 등이 감정가액에 살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정부 소속 이외 공공기관은 해당되지 않는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반 공공기관에 대해 감정가 이하로 팔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한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서는 국유재산 매각 방식을 준용, 공공기관 보유 부동산 매각 시 감정가에 입찰하되 유찰 시에는 매회 10%씩 총 50%까지(다섯 차례) 가격을 깎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가격 하한선도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 공공기관이 내부 지침상 감정가 이상으로 팔아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가격을 낮추면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재감정을 받아 가격을 낮춘 후 재입찰 절차를 거쳐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만약 감정가격이 시세보다 높아서 재평가를 받고 싶어도 감정을 받은지 6개월이 지나야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주식 매각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된다. M&A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자회사나 지분에 대해서는 가치평가가 문제"라며 "가치평가가 낮으면 특혜 시비가 일고 높으면 거래가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지분에 대한 가치평가 시 범주(range)를 두면 되는데 특정 가격에 묶어놓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헐값' 매각 시비 등 배임 가능성에 몸사려..정부, 매각 책임 공운위 등이 지도록 검토

이같이 공공기관이 감정가 이상으로 부동산 자산을 팔도록 내부 지침을 두고 있는 것은 헐값 매각 시비를 우려해서다. 헐값 매각 시비는 공공기관장과 이사진 등의 배임 논란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상장 공공기관의 경우 주주들이 배임을 문제 삼아 송사를 벌일 수 있다. 사후 책임이 두려워 공공기관장이 과감한 결정을 꺼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부가 구성하기로 한 자산 매각지원위원회에서 매각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달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자산 매각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기재부와 주무부처, 공공기관, 캠코, 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매각지원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위원회에서는 매각에 대한 책임을 기관장이 아닌 캠코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지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이 외에 용도 변경과 같은 지자체의 협조도 공공기관 부동산 매각 협상에서 중요한 이슈다. 현재 공공기관의 종전 부지는 대부분 일반 주거지역으로 묶여있어서 현 상태에서 팔면 개발 가치가 떨어져 용도 변경을 전제했을 때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한다. 지난 1일 서울시가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해주기로 한 서울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의 경우, 장부가액은 2조원이지만 용도 변경 이후 매각 가치는3조5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은 용도 변경 후 매각을 선호하고, 지자체는 용도변경을 대가로 부지 일부에 대한 기부채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용도 변경 이후 매각 등이 이뤄지려면 대체로 빨라야 1~2년이 소요돼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