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산업은행이 제안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 당진 패키지 인수를 위한 공식 협의를 시작했다. 포스코는 28일 동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매매 관련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했다. 이는 매매계약 관련된 동부제철과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의 내부 자료를 열람하기 위한 사전 절차로, 사실상 매각 실사를 착수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에 앞서 포스코는 지난 27일 산업은행으로부터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공동인수하는 방안을 제시받았다.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천공장 지분 20~30%를 인수하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이다. 나머지는 산은이 투자를 하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하겠다는 조건이다. 또 동부발전당진의 100%를 인수할 수 있는 우선인수협상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양측이 이같은 협상조건에 합의를 하기 되면 포스코는 매각가치가 최소 1조2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4000억~5000억원에서 인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금융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 파격적인 산은 공동인수 제안, 배경은?

산은이 이같이 파격적인 ‘공동인수’ 제안을 한 것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체들이 모두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업계의 맏형격인 포스코도 최근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이 투자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나온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기술유출 우려와 중국 철강업체의 국내 시장 진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정부로서는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를 요구하는 쪽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포스코의 재무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산은의 공동인수안이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 한진,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 한데 따른 금융당국의 부담감이 일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보내고 있다. 최근 현대그룹과 한진해운의 신용등급이 2~3등급씩 떨어지면서 중견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산은의 공동인수 제안 같은 ‘당근’이 나왔다는 것이다. 동부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인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을 조기에 마무리지으면서 기업구조조정을 조기에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동부제철 인천공장에 대한 재무적 투자 제안과 동부발전당진 우선인수협상자 지정이 ‘맞춤 세트’로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포스코로서도 계열사인 포스코에너지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동부발전당진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민간석탄발전사업자로 선정된 동부발전당진은 올해 중 발전소 착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국내 발전회사들이 인수를 타진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매각 협상 순항할까? 포스코·동부그룹 태도가 변수

이번 비밀유지협정 체결에 따라, 포스코와 산은은 향후 몇주간 동부그룹 구조조정안의 핵심인 동부제철 인천공장·동부발전당진에 대한 실사작업과 매매협상 등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실사작업에 따른 매각가치 책정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이 임박했다는 외부 시선과 달리 포스코는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 비주력 사업 정리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인수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정서도 읽힌다.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주력사업인 컬러강판 사업을 이미 포스코특수강이 하고 있고, 컬러강판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점이 적잖은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의 재무라인에서 인수제안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비밀유지협정을 체결했다고 해서 인수협상이 본격화됐다고 봐서는 곤란하다”면서 “그룹 재무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사업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시너지가 의심되는 사업을 떠맡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동부그룹 측의 태도도 변수다. 동부그룹은 산은이 제안한 패키지 딜이 매각가치 극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메이저 철강사들이 동부제철 인천공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포스코로 매각 대상자를 압축할 필요가 있냐는 얘기다. 동부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이날 열린 동부제철 주주 총회 후 기자들을 만나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의 패키지 매각은 여러 매각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며 “동부발전당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업체가 많은 만큼 경쟁입찰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업체든 국내업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아 좋은 가격을 받는 것”이라며 “분리 매각하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