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전원 케이블을 꽂을 수 있는 멀티탭 중에 '피봇 파워(Pivot Power)'란 아이디어 제품이 있다. 미국 퀄키(Quirky)가 만든 이 제품은 멀티탭 칸칸이 척추처럼 구부러져 크기가 큰 케이블도 걸리적거리지 않게 꽂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3년간 전 세계에서 총 7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12년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레드닷 디자인상'도 받았다.

이 제품을 내놓은 퀄키의 벤 코프만(Kaufman·28) 최고경영자(CEO)가 25일 방한(訪韓)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벤처기업협회와 전경련이 후원한 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다. 코프만은 "휴대폰 액세서리, 와인오프너, 연필꽂이 등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아이디어는 100만명으로 구성된 회원 커뮤니티(community)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을 직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일반인의 머리를 빌려 해결한다는 기발한 발상이다. 회사 이름인 퀄키(quirky)는 '기발(奇拔)한'이라는 뜻이다.

벤 코프만 퀄키 CEO는 “지금까지 제안된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104개 제품이 개발돼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며 “갓 시작한 기업의 자세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퀄키가 내놓은 베스트셀러 제품들. (왼쪽부터) 구부러지는 멀티탭 ‘피봇 파워(Pivot Power)’, 달걀노른자 분리기 ‘플럭(Pluck)’, 컴퓨터·스마트폰 케이블 정리 기구 ‘코디스(Cordies)’.

"고등학생 때 휴대폰 액세서리를 만드는 1인 기업을 차린 적이 있는데 매번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잠자고 있는 아이디어를 꺼내 상품화하는 새 사업을 해보기로 했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소셜 크라우드 소싱(Social Crowd Sourcing)'이다. 대중의 아이디어를 모아 제품 개발에 사용하고, 그 수익을 나눠갖는 방식이다. 코프만은 이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커뮤니티 회원들을 모집했다. 현재 확보한 회원은 1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매주 퀄키의 블로그에 4000여개가 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코프만은 "4000개 중의 3000개는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다양한 아이디어 덕분에 더 '퀄키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회원 커뮤니티는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미국 뉴욕 맨해튼 퀄키 본사 사무실에서 열리는 회의는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다. 회원들은 이 회의를 보며 아이디어와 디자인, 제품 설계 과정에 조언을 보탠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대한 투표도 한다. 200표 이상을 받은 아이디어는 디자인·엔지니어링 전문가들의 회의를 거쳐 제품 개발 대상에 오른다. 최종 상품화가 결정된 제품은 전 세계 100여개 협력 업체를 통해 생산된다. 히트상품인 멀티탭 '피봇 파워'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 최초 아이디어를 낸 미국 뉴욕 시민 제이크 진(Zien)씨는 44만5865달러를 지급받았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초기 4년간은 마케팅 비용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았는데도 매년 500%씩 회사가 커 나갔다. 지난해 4873만달러(약 511억원)를 벌어들였고, 올해는 1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프만은 "매출의 90%는 회사 운영 비용과 제품 개발·생산 비용으로 쓰이고 나머지 10%를 회사와 아이디어 제안자, 커뮤니티 회원들이 나눠 갖는다"며 "제품 개발 과정에서 참여한 회원들의 '영향력(influence)'을 점수화해 그 비율대로 매출을 나눠준다"고 밝혔다.

퀄키는 지난해 GE와 손을 잡고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가전제품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달걀이 몇개나 남았는지 스마트폰에 알려주는 달걀 수납기 '에그 마인더(Egg Minder)', 공간이나 물건의 온도와 습도 등을 체크해 스마트폰으로 전달해주는 '스폿터(Spotter)' 등이 대표적이다. 코프만은 "올해 여름 스마트폰으로 제어 가능한 에어컨도 내놓을 계획"이라며 "IT 기술이 필요한 복잡하고 어려운 제품들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