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논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이모(55)씨. 그는 얼마 전 친척이 부도 위기에 몰려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학원과 가까운 저축은행을 찾았다. 간단한 본인 확인절차를 거친 이씨에게 창구 직원은 "대출금리가 연 33%"라고 안내했다. 지금까지 제2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고, 빚을 연체한 사실도 없는데 금리가 터무니없이 높다고 생각한 이씨가 "신용등급이 2~3등급은 될 텐데, 금리가 너무 높다"고 물었다. 창구 직원은 덤덤한 표정으로 "우리는 신용등급은 고려하지 않는다. 설령 1등급이라도 금리는 똑같다"고 답했다.

대다수 저축은행이 신용대출을 해주면서 신용등급이 가장 좋은 1등급 고객이든, 신용도가 낮은 8등급 고객이든 똑같은 고금리를 받고 있어 고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25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HK나 동부저축은행 등 업계 상위 저축은행 몇개를 뺀 대다수 중소형 저축은행들이 고객의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연 30%대 고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저축은행은 우량 등급 고객에게 비우량 등급 고객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황당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객 신용등급 무시하고 똑같이 연 30%대 대출금리 적용

보통 신용등급이 좋은 우량 고객들은 저축은행 신용대출 상품을 많이 이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본지 취재 결과, 푸른저축은행은 전체 고객 중 신용등급 1등급 비중이 28.5%인 데 비해 5등급은 14%에 불과했다. 솔브레인저축은행의 신용대출 중에서 1등급 고객 비중은 29%로 9등급(1.5%)보다 월등히 높다.

우량 고객들이 저축은행 신용대출을 많이 이용하는 것은 대출금액 1000만원 이하의 소액 대출은 별도 서류 제출 없이 대출신청 1~2시간 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은행 신용대출은 신용등급 1등급 직장인이라도 다양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재직 증명서, 소득증빙서류 등 2~3가지 서류를 제출하면, 은행은 은행연합회를 통해 금융권 거래 현황을 조회하고 서류를 검토한다. 대출금은 빠르면 하루, 통상 이틀 뒤에 받을 수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전체 대출에서 신용대출 비중이 2008년 6월 5.1%에서 2013년 말 현재 26%(대출잔액 7조7000억원)로 뛰었다. 이재연 금융연구위원은 "저축은행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신용대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저축은행들이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화하지 않고, 우량·비우량 고객에 대해 모두 고금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본지 취재 결과 부산 고려저축은행은 1~8등급까지 34%대의 금리를, 친애저축은행은 신용대출 상품인 'SEED론'에 1~8등급에 동일하게 금리를 29.2%로 매겼다. SBI저축은행의 스피드론은 1등급 적용금리 구간을 '9.9~29.9%'라고 공시하고 있지만, 실제 1등급 평균 적용금리는 28.6%였다. 황당하게도 일부 저축은행은 비우량 고객보다 우량 고객에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었다. 신한저축은행의 'Help3651' 상품은 3등급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29.9%였지만, 4등급은 27.5%였다.

◇엉터리 신용평가시스템, 이마저 활용하는 곳 별로 없어

저축은행들이 고객 신용등급을 무시한 채 똑같이 고금리를 적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현재 10여곳의 저축은행들은 저축은행중앙회가 만든 신용평가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시스템 자체가 부실해 고객 신용등급별 차등 금리를 산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또 나머지 저축은행들은 이런 시스템조차 없어 객관적 기준 없이 대출금리를 주먹구구식으로 임의로 선정하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이 활용 중인 신용평가시스템은 고객의 연령·직업 등을 담은 은행연합회의 데이터와 제2금융권 이용실적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 고객 신용등급을 알려준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이 대부분 6~7등급 등 저신용자들만 상대하다 보니 우량등급 고객에 대한 정보가 빈약해서 고객별 신용도 차이를 분별해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고금리 신용대출 상품에 최적화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고객의 신용등급이 높다는 판단이 나와도, 연 30%대의 금리가 최저금리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신용도에 따른 고객의 부도율이나 위험도가 세부적으로 측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저축은행 상당수는 시스템에 의한 적정 기준 없이 임의로 대출금리를 설정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용평가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우리 재량과 기준에 맞춰 대출금리를 산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