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의 상장폐지가 사실상 확정됐다. 채권단이 상장 유지가 아니라 기업 회생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서다. STX조선해양은 현 시점을 기준으로 2조6000억원 가량 자본이 잠식됐다.

STX조선해양 뿐만이 아니다. 쌍용건설이 채권단의 추가 출자전환 거부로 상장폐지 실질심사 절차를 밟고 있고, 벽산건설, 동양건설산업 등이 상장폐지 위기에 처해 있다. KT(케이티)의 계열사 KT E&S는 모기업 지원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회사채 투자자들은 KT의 지원을 믿고 KT E&S 회사채를 매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무너질 경우 한국 경제와 주주들에게 큰 타격을 미칠 것을 우려해 살려주는, 이른바 대마불사(큰 말은 죽지 않는다. 큰 기업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는 의미) 원칙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 상장유지는 포기하고 기업은 살린다, 채권단의 바뀐 전략

기관은 지난해 12월 이후 거래정지 직전까지 STX조선해양 주식 27만3891주를 사들였다. 조선사로서의 경쟁력에 비해 주가가 떨어져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STX조선해양은 한 차례 감자를 실시하기도 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지난해말 주가는 2012년 2월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부 기관투자자는 이를 놓고 "너무 많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매수한 기관은 한 증권사인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그룹이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이 일부 계열사에는 매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어지간하면 채권단도 상장을 유지할 수 있게끔 지원했다. 하지만 이제 분위기는 바뀌었다. 지난해 이후 쌍용건설, 동양건설산업 등도 줄줄이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아무리 지원해도 결국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법정관리 재수생까지 나오는 마당에 막무가내로 지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채권단은 상장 유지는 포기하고 기업은 살리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STX조선해양 또한 채권단은 8400억원 가량을 지원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 회사채시장에서도 모기업 효과 사라져

회사채 시장도 마찬가지다. 모기업 기대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박정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KT E&S가 직접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대출 사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기업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KT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유동화증권을 발행했고, 유통이 가능했던 관행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회사채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부실 계열사 솎아내기가 한창이다. 재무구조 개선을 천명한 포스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금융지주사 계열의 캐피탈업체 회사채 가치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보증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한국복합물류는 AA등급인 CJ대한통운이 지급을 보증했지만 수요예측에서 미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