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빌린 일시 차입금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부진으로 세수가 예상에 크게 못미치자 한은에서 임시변통식으로 끌어다쓴 자금이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해 한은 차입금 이자로만 1000억원에 가까운 혈세가 나갔다. 지난해 국세는 예상대비 8조5000억원이나 덜 걷혔다.

13일 심재권 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와 한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한은에서 빌린 일시 차입금이 작년 한 해에만 74조5000억원이었다. 지난해 총예산 349조원과 비교하면 21%에 달하는 규모다.

참여정부 집권 5년동안의 한은 차입금 총액 39조5244억원의 두배에 가깝고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이 잦았던 이명박 정부의 5년동안 총액인 131조556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는 세입·세출이 불균형하거나 재정조기집행을 위해 일시적인 자금 부족이 발생하면 30조원 한도(잔액기준)내에서 재정증권을 발행하거나 한은 일시차입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한국은행 차입 현황

◆ 한은 차입금 급증에 이자만 975억…재정증권 발행이자도 1669억

지난해 정부의 한은차입금 이자는 975억원으로 2012년 257억원의 4배 가량이었다. 2011년의 12억원과 비교하면 8배 급증한 것이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의 622억원 보다도 훨씬 많았다.

지난해 정부의 재정증권 발행이자도 166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 5년동안의 재정증권 발행이자 1661억원보다 많은 수치다. 재정증권은 국고금 일시부족분 조달을 위해 정부가 금융시장에서 발행하는 유가증권이다. 한은 일시차입금 이자와 재정증권 발행이자를 합산하면 박근혜 정부가 지급한 첫 해 이자는 무려 2644억원에 달한다.

재정증권 발행 및 한국은행 일시차입금에 따른 이자 규모 추이

정부는 이처럼 차입금 이자 부담이 늘자 올해 예산안에 이자상환액 600억원을 반영했다. 일시차입금에 따른 이자는 통합계정 운용수익금으로 우선 지불하고 부족한 금액은 일반회계에서 충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자를 지불할 운용수익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을 통해 일시차입금 이자를 갚는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 예산정책처 "차입금 증가, 정부 세입전망 부정확성에 기인"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재정증권 발행 및 한은 차입금 증가는 정부의 세입전망 부정확성, 경기 둔화에 따른 세수부진, 경기대응을 위한 재정 조기집행 실시 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예정처는 "정부가 낙관적인 경기전망에 따라 세입·세출예산을 편성해 세수부족이 과다하게 발생할 경우 당초 세출 스케줄을 따르기 위해 단기 재원조달의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난해 국세수입 오차율은 -4.2%로 11년만에 가장 컸다.

예정처는 정부가 금리가 더 높은 한은 차입금 보다는 재정증권 발행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정부의 재원조달 실적을 살펴보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재정증권 발행보다는 한은 차입금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면서 "조달금리를 살펴보면 한은 차입금은 재정증권 발행금리보다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재정증권 발행금리 및 한은 일시 차입금리 비교

국회 입법조사처도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차입하게 되면 본원통화가 증가해 통화관리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물가와 자산가격에 강한 상승압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가 부각되자 여당은 정부의 한은 차입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정부가 재정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부적절한 경우에 한해서만 한은으로부터 일시차입금을 빌릴 수 있게 한 '국고금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김대식 중앙대 명예교수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한은 차입금을 활용하는 것은 세입·세출 구조가 안맞아서 발생하는데 박근혜 정부 첫 해 차입금 규모는 과다한 측면이 있다"며 "역대 정부에서도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 조기집행 등의 이유로 차입금을 활용했지만 과도한 이자가 사용되지 않게 운용의 묘를 잘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세입·세출의 불일치로 세수가 부족해 일시 차입금이 다소 늘어나 이자도 함께 증가한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한은 차입보다는 재정증권을 더 많이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