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한 여직원이 차량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노조 파업과 경영진의 판단 실패로 폐쇄 위기에 처했던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이 8년 만에 극적으로 살아났다. 일거리가 없어 놀던 노동자들은 2교대를 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공장 곳곳에는 차량을 조립하고 점검하는 근로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아직 전성기 수준의 생산량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지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10만대가 넘는 차량을 생산하며 바야돌리드 공장은 회복기에 들어갔다.

바야돌리드 공장, 천국에서 지옥으로

르노 바야돌리드 공장은 지난 10년 사이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르노의 해치백(뒷좌석과 트렁크가 합쳐진 형태) 차량인 '클리오'의 성공으로 2000~2002년 약 28만~29만대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바야돌리드 공장이 불과 4년 만인 2006년 10만대 이하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생산량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경영진의 오판이었다. 르노 스페인은 2005년 출시한 새 모델 '모두스' 생산 물량 전부를 바야돌리드 공장으로 끌어왔다. 클리오가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모두스 역시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영진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2005년 16만6858대를 기록했던 자동차 생산량이 2006년에는 7만9474대로 감소했다. 이후 2012년까지 2007년(10만4465대)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산량이 10만대 아래를 밑돌았다.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캡처(한국명 QM3)의 뼈대.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그 뒤를 이은 유럽 경제 위기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바야돌리드 공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05년 2교대로 운영되던 공장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1교대를 겨우 유지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할 시간이 줄어들자 일자리와 임금도 줄었고, 그 결과 근로자들의 불만은 커졌다. 7만9474대라는 최악의 생산량을 기록한 2006년 노조와 바야돌리드 시민들이 길거리로 뛰쳐 나왔다.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불거진 2008년에는 바야돌리드 공장과 인근에 위치한 팔렌시아 공장에서 2250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했고, 1만6000명의 시민들이 이에 가세했다.

마뉴엘 기예르모 바야돌리드 공장장은 "당시 바야돌리드 공장에서만 2000~3000명 정도의 근로자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한 직원이 차량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노조가 손 내밀다

상황은 악화됐다. 스페인 현지 언론에서는 노조와 시민들의 연이은 시위와 바야돌리드 공장 폐쇄 위기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왔다. 결국 2009년 스페인 정부, 바야돌리드주(州) 정부, 바야돌리드 공장, 노조가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나섰다.

가장 큰 움직임을 보인 것은 노조였다.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에 노조는 임금을 스스로 동결했고, 초과근무 수당을 양보했다. 팔렌시아와 바야돌리드 공장을 오가며 일을 할 수 있도록 근로 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스페인 정부도 적극적으로 바야돌리드 공장을 지원했다. 협력 업체가 공장 근처에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부지를 제공했고, 세제 혜택과 근로자들의 훈련(트레이닝)을 지원했다.

이에 프랑스의 르노그룹도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르노 본사는 2010년 바야돌리드 공장에 생산성을 높이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이 조건을 충족하면 새 차량인 캡처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바야돌리드 공장에서는 CUV(Crossover Utility Vehicle) 차량인 캡처(한국명 QM3)와 전기차인 트위지를 만들고 있다. CUV란 도심 주행에 맞는 소형 세단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SUV의 힘과 편의성을 가진 차를 말한다. 바야돌리드 공장이 르노의 조건을 맞추면서 캡처의 생산을 모두 맡게 된 것이다.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캡처(한국명 QM3)의 모습.

실제로 캡처는 바야돌리드 공장의 효자가 되고 있다. 지난해 바야돌리드 공장에서는 12만4942대의 차량이 생산돼 2007년 이후 처음으로 10만대가 넘는 생산량을 돌파했다. 캡처가 생산된지 3달 만에 1교대에서 2교대로 근무 체제가 전환됐고, 지난해 650명을 신규채용했다.

기예르모 공장장은 "▲바야돌리드 공장이 새로운 차량을 만들 수 있다는 신뢰감을 르노에게 심어줬다는 점 ▲직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약속을 이행했다는 점 ▲지자체와 스페인 정부의 지원 ▲노조의 양보 덕분에 바야돌리드 공장이 정상화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캡처(한국명 QM3)의 모습.


국내 공장에 시사점, 노사 화합이 답

국내 자동차 공장들도 바야돌리드 공장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자동차 업계가 올해 노사 협상에서 통상임금과 생산량 감소로 인한 비용 절감 등의 문제로 인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GM 군산공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6일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말리부 디젤' 신차발표회에서 "어떻게 하면 올해 임금·단체 협상을 평화롭게, 생산에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을까가 올해의 가장 큰 숙제"라고 밝혔다. 군산공장의 2월 수출이 감소하며 생산량이 줄어든 탓에 1년여만에 또 다시 희망퇴직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GM은 2009년 처음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지난 2012년 5월과 11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받은 적이 있다. 특히 11월에는 연구개발과 사무직 6000명 전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르노 바야돌리드 공장의 사례처럼 노사간의 갈등보다는 화합이 결국 장기적으로 회사의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가 적정한 합의를 통해 뜻을 모아야 공장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