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클럽이나 비만 클리닉에 가면 발판이 있고 손잡이가 달린 기계가 있다. 이 기계의 발판 위에 올라서서 손잡이를 약 1분간 잡고 있다가 놓으면 기계에서 사용자의 신체 성분을 분석해준다. 키·몸무게는 물론이고 비만율, 근육량까지 알 수 있다.

몸 상태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만든 이 기계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바이오스페이스에서 만든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다. 바이오스페이스는 1996년 세계 최초로 전기를 이용해 몸 전체를 분석하는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를 만들어 시장에 출시했다.

그전까지는 몸 전체를 분석하는 체성분 분석기가 없었다. 연구소에서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체성분 분석기가 있었지만 정확도가 떨어져서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오스페이스는 손잡이만 잡으면 신체 전체를 분석해주는 체성분 분석기를 만들어 처음으로 세계시장에 내놨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독창적인 제품을 무기로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한 ‘퍼스트 무버’ 중소기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바이오스페이스 차기철 대표, 부강샘스 이성진 대표, 미동전자통신 김범수 대표.

이뿐 아니다. 침대의 먼지를 청소해주는 침구 청소기, 사고 현장을 녹화하는 자동차 전용 블랙박스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가장 먼저 만든 제품들이다. 과거엔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개척하는 것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굴지의 대기업들에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로 변신하는 것이 큰 과제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에 앞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퍼스트 무버'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해외시장 공략

2007년 세계 최초로 침구청소기 '레이캅'을 만든 부강샘스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인다. 일본·중국·미국 등 세계 24개국에 수출되는 레이캅은 2012년 해외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작년에는 해외에서 거둬들인 매출 2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한다.

레이캅은 의사 출신인 이성진 부강샘스 대표가 침대, 이불 등에 있는 먼지, 진드기 등을 없애기 위해 만든 제품이다. 이 대표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피부병에 시달리던 아이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서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레이캅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 대표는 "부모들의 걱정은 우리나라나 해외나 다 비슷했다"며 "미리 제품을 써본 뒤에 구매를 결정하도록 했더니 구매 요청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레이캅은 작년 11월 일본 주간지 '닛케이 트렌드'에서 선정하는 2013년 히트 상품 베스트 30 중 8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자동차 전용 블랙박스 역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퍼스트 무버였다. 원래 블랙박스는 비행기의 정보저장장치이지만 우리 기업들은 차량 운행 기록과 사고 현장을 촬영하는 기기로 진화시켰다.

미동전자통신·팅크웨어·현대엠엔소프트 등은 2009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 전용 블랙박스를 만들어 시장에 출시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러시아·일본·중국·대만·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미동전자통신은 작년 매출의 약 5%가 러시아,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였다.

김범수 대표는 "처음 외국에 수출했을 때는 도대체 뭐 하는 기기인지 외국인들이 이해를 못 했다"며 "하지만 한번 기능을 보면 서로 구매하겠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바이오스페이스의 체성분 분석기 '인바디'는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오르는 북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인기가 좋다. 신체에 전류를 흘려 체성분을 분석하는 방식인 인바디는 현재 전 세계에서 바이오스페이스에서만 생산하는 제품이다. 2012년에는 세계 50개국에 수출해 134억원의 해외 매출을 올렸다.

새로운 시장 없이 살아남기 힘들어

국내 중소기업들이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든 배경에는 생존 차원의 절박함이 있었다.

삼성전자·LG전자·애플·소니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비슷한 제품으로 승부해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캅을 만든 이성진 대표는 "우리나라 시장이나 해외시장이나 이미 존재하는 제품군은 시장이 포화된 상태"라며 "포화된 시장에 들어가서 치킨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제품군을 창조해서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김범수 미동전자통신 대표 역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중소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며 "중소기업일수록 연구 개발에 치중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

기존 시장에는 없던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업을 뜻하는 말. 기존 제품이나 기업을 복제하거나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와 비교해서 많이 사용한다. 아이폰·아이패드로 시장을 선도한 애플을 대표적인 퍼스트 무버로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