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조업의 경기회복이 기대되면서 화학 원재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 화학업체들은 재미를 못보고 있다. 중국 플라스틱 시장 선점에 나선 중동 업체들에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한국 화학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거대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범용 합성수지라 불리는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의 중국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 한국 업체들도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수익에도 비상이 걸렸다.

◆ 中서 밀리는 韓 화학업체

중국의 PE 수입규모 추이(좌)와 주요국 시장점유율(우).

최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중국의 PE 수입량은 111만톤으로 1년전에 비해 30% 넘게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PP 수입량 역시 45만톤에 달해 기존 사상 최대 규모였던 2009년 7월의 44만톤을 넘어섰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로 놓고 보면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PE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16.4%)와 이란(14.7%) 등이 시장을 확대해 나가면서 중동(45.5%) 국가들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한국은 11.5%에 그쳐 갈수록 줄고 있다. PP도 마찬가지다. 중동 국가들의 시장점유율이 1년 만에 30%를 넘어 31.9%나 된 반면, 한국은 18.5%로 2개월 연속 20%선을 밑돌았다.

시장 점유율의 차이는 가격에 기인한다. PE의 경우 중동산에 비해 한국산이 톤당 140달러 가량 비싸고, PP의 가격 차이는 170달러선이다. 한국산이 중동산에 비해 적게는 15%, 많게는 30% 가량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들이 전했다.

가격의 차이는 품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원재료의 차이도 크다. 국내 화학업체들은 주로 석유 분해 과정(NCC)을 거쳐 나온 나프타를 기반으로 플라스틱 원료들을 만든다. 하지만 중동 업체들은 석유를 싸게 조달할 뿐더러 가격이 싼 천연가스를 가공해 이들 제품을 만든다.

교보증권 손영주 연구위원은 “중국 시황이 살아나고는 있지만 PP와 PE 쪽의 헤게모니는 이미 중동 업체들에게 넘어간 상황”이라며 “중국 플라스틱 가공 업체들이 품질보다 가격을 우선시 하면서 한국 업체들보다 중동 지역 업체들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내 화학업체, 이유있는 연초 주가 급락

PE와 PP는 국내 종합화학 업체들이 주로 만든다. 국내에서는 LG화학(051910)과 한화케미칼, SK종합화학, 롯데케미칼, 대한유화(006650)등이 주요 생산 업체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 시황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들 업체들은 올 들어서도 별다른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올해 경기가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에 지난 연말 29만9500원까지 오르며 30만원 회복을 넘봤던 LG화학은 이달 들어 25만원선까지 하락, 16% 하락했다. 롯데케미칼의 주가 하락률 역시 15%에 달하고 대한유화도 10% 넘게 떨어졌다.

다급해진 국내 업체들도 원료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고 있는 셰일가스 도입에 적극 나서는 한편, 천연가스 기반 시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화학 박진수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에탄가스를 기반으로 하는 카자흐스탄 현지공장의 안정적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석유화학 업계에 봄이 찾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제품 1톤당 마진(제품 판매가격-원료가격)은 2월 350달러로 1월에 비해 2달러 오르는데 그쳤다. 지난해 3분기 보다는 8% 넘게 하락한 수치다.

그나마 3월이 되면 다시 화학제품 성수기에 진입하고 글로벌 대형 화학업체들이 정기보수를 시작한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거리다. 2월 일본의 아사히 카세이를 시작으로 쇼와 덴코, 토소 등 대형 NCC 업체들이 정기보수에 들어간다.

동양증권 황규원 연구위원은 “봄철이 되면 토목과 건축용 수요가 재개되고 농업용 필름도 같이 증가한다”며 “4월초 중순이면 과잉재고가 해소되면서 제품 가격과 마진 회복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SK종합화학 울산공장 전경.

☞PP, PE란?

PP(폴리프로필렌, polypropylene)와 PE(폴리에틸렌, polyethylene)는 PS(폴리스티렌), PVC(폴리염화비닐) 등과 함께 화학업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4대 플라스틱 범용제품에 속한다. PP는 충격에 강하고 투명한 소재라 일회용 주사기나 자동차 플라스틱 소재, 가전제품, 포장용 필름 등 다양하게 쓰이고, PE는 저밀도(LDPE)와 고밀도(HDPE)로 나뉘어 LDPE는 포장지나 전선피복, 각종 랩 등에, HDPE는 케이블이나 플라스틱 용기, 파이프 등에 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