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해온 이모(58)씨는 작년 가을 건물 주인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식당이 세(貰) 들어 있는 건물이 팔려 조만간 장사를 접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씨가 가게 문을 열며 실내 장식, 상가 권리금으로 쓴 돈은 약 1억5000만원. 하지만 장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갑자기 문 닫게 되면서 쏟아부은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된 것. 박씨는 "집까지 담보로 대출받아 장사를 시작했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잃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씨처럼 식당이나 치킨집·커피전문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건물주의 무리한 요구나 세입자의 과도한 권리금(프리미엄) 요구로 피해를 보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25일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영세 임차(賃借)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금 거래 표준 계약서'를 도입하고 권리금 피해를 구제해주는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계약서·보험 등 권리금 보호 장치 마련

권리금은 상가 임대차 계약과는 별도로 점포 내 설비나 입지 여건, 기존 영업권 등 상가 운영과 관련한 유·무형 이익을 환산해 임차인들 간에 주고받는 돈이다. 1960년대 이후 상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새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기존 세입자에게 웃돈 성격으로 주던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문제는 상가 세입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권리금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언젠가는 한 명의 세입자가 권리금 없이 장사를 접어야 하는 '폭탄 돌리기'와 같다는 점이다. 일례로 임대기간이 끝나고 나서 건물주가 기존 상가와 다른 업종으로 변경해 다시 임대하거나 건물 리모델링이나 재개발을 목적으로 점포를 비워달라고 요구할 경우 임차 상인은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다.

정부는 상가 임대차 시장에 만연해 있는 불합리한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권리금 제도를 양성화하고 보호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모든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해 임대 기간 중에 건물주가 바뀌어도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제시하는 영업기간(5년)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법은 서울 지역의 경우 환산 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 이하인 임차인만 보호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건물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기존 자영업자가 다른 상인에게 임차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권리금 표준계약서 제도도 도입한다. 신규 임차인이 기존 상인에게 지급한 권리금 내역 등이 적힌 '권리금 거래 표준계약서'를 임대차계약서와 함께 구청이나 세무서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상가 세입자가 권리금을 떼일 경우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정부는 거래를 맡은 공인중개사가 권리금 계약서를 활용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정부는 권리금을 떼일 위기에 놓인 임차인을 보호하는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권리금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는 조정기구도 만들 방침이다. 또 건물주의 요구로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빼앗길 경우 남은 임대 기간 동안 임차인이 벌 수 있는 영업 가치를 계산해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키로 했다.

일본에서는 건물주가 상가 세입자를 내보낼 경우 단골손님 수에 따라 권리금을 보상해주고 있다. 영국에서는 건물 주인이 장사를 잘해 건물 가치를 높인 임차인을 내보낼 경우 가치 상승분에 대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

임대료 인상·이면 계약 등 부작용 우려

정부는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행으로만 남아 있던 권리금을 법의 테두리 안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권리금 제도를 양성화하고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그동안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던 권리금 거래가 제도화될 경우 권리금 규모에 따른 임대료 상승과 함께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한 이면(裏面) 계약 등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가뉴스레이다'의 선종필 대표는 "거래의 투명성을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면 권리금을 받는 기존 임차인은 세금을 내야 한다"며 "더욱이 권리금 계약서는 정부의 권고 사항인 만큼 현금 거래를 통한 이면 계약이 늘고 권리금 시장이 더 음성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건물주가 권리금을 근거로 임대료를 높이는 부작용도 벌어질 수 있다. '상가정보연구소'의 박대원 소장은 "일반적으로 권리금은 건물이 낡아 임대료는 싼데 장사는 잘되는 점포에서 높게 형성된다"며 "건물주가 권리금액을 바탕으로 가게 영업 상황을 파악, 임대료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권리금은 개인 간의 거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상가 세입자나 부동산중개소 외에는 시세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저스트알' 김우희 대표는 "상가 임대차 시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권리금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 언제 시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