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출신인 김태동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가진 정책 수단이 목표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본연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누가 한은 총재로 와도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봤다.

김 교수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누가 한국은행 총재가 되어야 하는가' 토론회에서 이러한 견해를 밝혀 이목을 끌었다. 그는 "네덜란드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얀 틴베르헨에 따르면 보유한 정책수단이 정책목표보다 많거나 같을 때만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2011년 한은법이 개정되면서 한은의 목표가 두 가지(물가안정, 금융안정)로 늘었지만 정책수단은 하나 뿐(기준금리)”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정책수단을 마련 해주기 전에는 라구람 라잔(인도 중앙은행 총재)이든 마크 카니(영란은행 총재)든 어느 누구를 불러와도 한은 총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차기 한은 총재와 한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발제자인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는 차기 한국은행 총재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물가안정목표제를 없애고 고령화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대비하는 등 통화정책 패러다임 변화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차기 한은 총재는 변화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있는 인사'여야 한다고 했다.(관련 기사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20/2014022001418.html)

지난 정부에서 금통위원을 지낸 바 있는 김대식 한중금융경제연구원장은 "한은이 물가안정을 목표로 삼는다는 말 속에 이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모두 대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면서 "중앙은행 총재가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디플레이션 치유자로 역할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두 상황 모두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은이 재량적으로 변화를 주도한다는 말은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며 한은의 변화가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의 독립성 강조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었다. 윤석헌 숭실대학교 금융학부 교수는 한은의 독립성이 기관 이기주의 혹은 폐쇄성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는 "정부나 정치권이 단기적 정책목표에 집착해 통화정책을 재량적으로 사용하려는 경향을 차단하기 위해서 독립성이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고립되어서는 안되기에 한은은 적극적으로 중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은 총재는 그저 '통화정책'을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들의 삶을 위해서는 국제감각, 해외 임무수행 같은 능력보다 몇 년 뒤를 내다보는 안목과 통화정책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통위원들도 한은 총재처럼 청문회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박 연구위원은 "다른 선진국처럼 금통위원 한 명 한 명을 청문회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동 교수는 "일단 이번에 한은 총재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되고 나서 미진하다 싶으면 금통위원들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김대식, 김태동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윤석헌 숭실대학교 교수,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원종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