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한민국 재계 순위(順位)가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요동칠 조짐이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순위 변화가 없었던 상위 10위(공기업 제외)에서는 4개 회사의 자리가 바뀌고, 20대 기업 가운데는 절반이 넘는 대기업의 순위가 바뀔 전망이다.

이런 변화는 글로벌 금융 위기와 연이은 국내외 경기 침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일부 대기업이 구조조정에 돌입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한국 재계의 순위 변동은 글로벌 경기(景氣) 침체의 충격에 얼마나 잘 대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인 셈이다.

20대그룹 절반 이상 순위 바뀔 듯

10대 그룹 중 삼성·현대차·SK ·LG의 '빅(Big) 4'와 롯데(5위)·포스코(6위)까지는 순위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7~10위권에서는 큰 변화가 예상된다.

GS그룹은 작년 말 인수 계약을 체결한 STX에너지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승인 심사가 끝남에 따라 이달 안으로 인수 작업을 마칠 계획이라고 13일 밝혔다. GS그룹은 STX에너지 인수를 정식 마무리하면 재계 순위 상승이 유력시된다. GS그룹은 현재 재계 순위에서 자산 기준 1조3000억원 차이로 현대중공업보다 한 단계 낮은 8위이다. 그러나 자산 규모가 1조5500억원대인 STX에너지를 합칠 경우,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7위에 뛰어오르게 된다.

GS의 STX에너지 인수는 재계 13위였던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져 해체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STX는 양대(兩大) 주력 사업인 조선과 해운업이 동반 불황에 빠지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그 위기를 넘지 못했다.

재계 순위 9위인 한진그룹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전망이다. 세계 항공업계의 불황으로 대한항공의 경영 실적이 악화된 데다, 자금난에 빠진 한진해운을 지원하기 위해 3조9000억원 규모의 자산 매각을 준비하고 있는 탓이다. 대한항공의 현재 부채비율은 700%가 넘는다. 대한항공은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작업으로 2015년까지 부채비율을 400%대로 낮추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를 위해 자회사인 한진에너지가 갖고 있는 에쓰오일 주식 3000만주를 팔고 노후 항공기와 부동산을 처분하기로 했다. 한진그룹이 빠져나간 9위는 한화그룹이, 10위에는 KT가 각각 오를 전망이다.

'위기 대응 리더십'이 관건

김준기 회장이 평생의 꿈인 반도체를 포기하며 구조조정에 나선 동부그룹도 순위 하락이 불가피하다. 17위인 동부그룹부터 20위인 대림그룹까지 4개 그룹의 자산 차이가 1조원에 불과한데, 동부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동부하이텍·동부메탈·동부제철 인천공장·동부당진발전의 지분가치는 3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자산이 9200억원이 넘는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해 경쟁자들을 제칠 기회를 확보했으나, 오히려 주요 계열사를 내놓으며 순위가 낮아지게 됐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재계 순위 변동은 외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성숙기에 접어든 21세기 상황에서 대한민국 재계 판도는 각 대기업이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적응하고 위기에 대응하는 리더십과 시스템을 잘 구축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