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가 난데없는 더위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온이 섭씨 16도까지 올라가면서 눈이 녹아 스키 선수들이 애를 먹고 있다. 소치는 다시는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수 없을지 모른다. 지구온난화가 지금처럼 지속되면 2050년대 중반에 소치는 동계올림픽을 열기에 부적합한 기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네이처지는 지난 4일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겨울 스포츠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계올림픽 열 곳 찾기 어려워

지난달 캐나다 워털루대의 대니얼 스콧(Scott) 교수는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오스트리아 연구진과 함께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 동계올림픽을 열 장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12일(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의 루스키 고르키 점핑센터에서 열린 여자 노멀 힐(K-95) 스키 점프 결선에서 오스트리아의 다니엘라 이라슈코-스톨츠가 하늘을 날고 있다. 다니엘라 이라슈코-스톨츠는 이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눈의 양과 질이 나빠져 스키 점프 같은 실외 경기가 동계올림픽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면 지난 10년간 겨울 중 9년은 올림픽 개최 시기에 기온이 영하를 유지하고 눈 깊이는 30㎝ 이상이어야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도, 2050년대가 되면 소치, 프랑스 샤모니, 그르노블,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등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지 네 곳은 동계올림픽을 열 수 없다. 온실가스 배출이 악화한다면 2080년대 동계올림픽 재개최가 가능한 곳은 역대 개최지 19곳 중 6곳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됐다.<그래픽 참조>

1970년대 이래 눈의 양과 질 악화

동계올림픽에 대한 위협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눈의 양과 질 모두가 나빠지고 있다. 미국 럿거스대 세계 눈 연구소 데이비스 로빈슨(Robinson)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북반구에서 눈이 내리는 기간이 3주 정도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대 마틴 베니스턴(Beniston) 교수 연구진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스위스의 스키장에서 눈으로 덮인 지역의 한계 고도가 15년 동안 40m나 올라갔다고 밝혔다. 스위스 엥겔베르그 스키장은 현재 120일간 운영되는데, 지금처럼 기온이 올라가면 2100년쯤 현재의 4분의 1인 한 달밖에 스키를 탈 수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눈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스키는 마르고 건조해 푹신한 느낌이 드는 눈에서 해야 제격이다. 이런 눈은 스키가 지나가면 공중으로 부서지면서 마치 샴페인 거품처럼 보인다. 이를 '샴페인 파우더(champagne powder)'라고 한다. 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면 습기가 많은 눈이 내려 쌓인 눈의 밀도가 높아진다. 딱딱한 눈이 되는 것이다.

◇저고도 지역 스키장에 직격탄

지구온난화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측되는 곳은 저고도에 있는 스키장들이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진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2039년까지 미국 코네티컷,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고도 750m 이하 스키장 17곳 모두가 문을 닫을 전망이다. 반면 그보다 고도가 수백m 높은 버몬트주의 스키장 18곳 중 최소한 94%는 2070년대까지 살아남을 것으로 분석됐다.

낮은 곳에 있는 스키장은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어린 시절 이런 곳에서 스키를 배운 사람 중에 나중에 선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여자 알파인스키 활강 부문 금메달 수상자인 미국의 린지 본도 해발고도 364m 스키장에서 처음 스키에 입문했다고 한다. 저고도 스키장이 문을 닫으면 선수 배출에도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고도가 높은 곳의 스키장이라도 이번 세기 말에 가까이 가면 역시 퇴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몬태나 주립대 연구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해발고도 1900m 이상 스키장도 눈 깊이가 지금의 2.09m에서 2090년대까지 1.56m로 줄어들 전망이다. 눈 깊이가 30㎝ 이상을 유지하는 기간도 지금은 254일이나 되지만 2090년대가 되면 171일로 줄어들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워털루대 스콧 교수는 "눈이 사라지면 앞으로 동계올림픽은 하키 같은 실내 종목이 주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계올림픽에서 스키나 스노보드가 사라지고 실내 종목만 남는다면 겨울 스포츠란 이름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