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자회사 부장급 직원 김모씨가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2800억원의 대출 사기를 저지른 사실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하나은행 등 피해 금융사들은 그동안 관련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금융권의 대출관리시스템에 허점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자금추적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해당 금융사들의 여신심사 소홀 등이 드러날 경우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T의 자회사인 KT ENS(전 KT네트웍스)의 인재개발팀 부장급 직원 김모씨는 회사 협력업체들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나간 대출 가운데 2800억원을 가로챘다. KT ENS의 협력업체인 주식회사 N사가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휴대폰을 구입해 KT ENS에 납품한 뒤 매출채권을 SPC에 양도하면 SPC는 이 매출채권을 저축은행 등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구조였다. 일부 매출채권은 정상적인 거래로 발행됐지만 상당 부분은 없는 거래를 있는 것으로 조작한 거짓 매출채권이었다. 김모씨는 이날 오후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아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일부 은행이 대출을 해주기 전 KT ENS 담당자를 찾아가 채권양도승낙서를 받았고 제출서류에 KT ENS 인감날인까지 찍혀 있었던 만큼 KT ENS직원이 N사 직원과 공모한 사기대출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출 사기로 피해를 본 금융회사는 모두 13개다. 피해 규모는 하나은행이 1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농협은행과 국민은행이 400억~500억원 선, 저축은행 10개가 약 8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출액은 '대출 돌려막기'에 사용됐다. 새로 대출받은 돈은 이전에 빌린 대출 등의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사용됐다. 금융당국은 계좌추적을 통해 대출금이 대출금 상환 이외에 개인적 용도로 쓰였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으로 금융사의 부실한 대출관리시스템도 드러났다. 해당 은행들은 언론에 알려지기 전까지 관련 내용을 파악조차 못 한 상태였다.
피해 은행들은 KT ENS 직원을 직접 만나거나 보증을 받는 등 대출과정에선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금융사 관계자는 "정상적인 매출채권을 근거로 SPC 앞으로 대출이 나갔다"며 "현재로선 부당대출이 아니라 자금 횡령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차주명은 상이한데 주소는 유사하고 전화번호는 다른' 여러 건의 대출이 발생했지만, 금융사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보는 "담보로 받은 매출채권이 대기업인 KT의 자회사라 대출금 회수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심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은 N사로부터 받은 담보채권에 다른 금융회사들이 신용보증을 해준 만큼 자금회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증 서류까지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어 실제 회수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보증을 받지 않은 금융사는 N사로부터 회수할 수 있지만, N사가 자본금 100억 미만의 소형업체이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KT ENS도 매출채권 존재를 부인하는 만큼 회수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이번에 문제가 된 은행과 저축은행에 대해 검사를 진행해 여신심사 소홀 등이 확인되면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다. 아울러 관련 금융사에 대해 대출 취급 경위 및 내용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함과 동시에 사고 관련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고발 조치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