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올 해부터 연비가 나쁜 차를 파는 자동차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국산차 회사 중에는 과징금을 내는 회사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징금 부과의 기준이 L당 17km로 높아 보이지만,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이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과징금 부과의 기준으로 삼는 연비가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 차에 붙어있는 표시 연비가 아니라 자동차 회사들이 자체 측정한 연비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강력한 환경·에너지 정책을 시행하는 것처럼 생색만 내고 실제 자동차 연비를 높이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일부터 평균 연비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자동차 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을 개정·시행한다고 5일 밝혔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들은 1년동안 판매한 자동차의 평균 연비가 L당 17km보다 나쁠 경우 L당 1km가 차이 날 때마다 대당 8만2352원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야 한다. 10만대를 판매한 자동차 회사의 평균 연비가 L당 16km였다면 8만2352원에 10만대를 곱한 82억여원을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자동차의 연비가 L당 17km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자동차 회사들이 거액의 과징금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와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5사는 모두 이번 과징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과징금 부과기준으로 삼는 기준연비 'L당 17km'가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표시 연비가 아닌 자동차 회사가 자체 측정한 측정 연비이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연비를 측정하는 자가 인증 방식으로 연비를 확정한다. 정부는 사후 검증을 통해 연비가 과장된 경우 처벌하는 방식으로 연비 관리를 한다.
현재 판매중인 자동차의 '자체 측정 연비'는 L당 17km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설명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보통 자동차 회사들이 도심과 고속도로 구간에서 측정한 이 연비는 실제 표시 연비보다 20~30% 높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계산을 해 봐야 알겠지만 현재의 기준 대로라면 2015년까지 실제 과징금을 낼 회사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 관계자들도 "2015년까지는 과징금을 부과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계의 경우 대형 가솔린 차량 비중이 높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과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등 연비가 매우 낮은 일부 고급차 업체들의 경우 과징금을 부과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전시 행정을 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안 그래도 표시 연비조차 실제 연비와 차이가 많아 소비자 불만이 높은 상황인데, 정부는 왜 저런 과장된 수치를 쓰는지 모르겠다"면서 "기준을 표시 연비로 바꾸는 것은 물론 표시 연비 산정 절차도 보다 엄격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런 식이면 자동차 회사들의 친환경 기술 개발 의지도 약해질 것"이라면서 "특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 자동차 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는 점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