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왼쪽)와 겨울왕국 포스터.

월트디즈니의 ‘겨울왕국’이 극장가에서 인기를 끌면서 새롭게 조명받는 작품이 있다. 지난해 겨울 드림웍스가 제작한 ‘가디언즈’다. 1년 시차를 두고 세상에 나온 두 작품의 설정과 배경이 서로 흡사하다는 점이 알려지며 시선을 끌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겨울왕국과 가디언즈의 두 주인공이 함께 등장하는 크로스오버 팬아트(서로 다른 작품 속 주인공을 소재로 만든 작품)도 등장했다.

두 작품 속 주인공은 겉모습 외에도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처럼 가디언즈의 ‘잭 프로스트’도 눈을 내리게 하고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비범한 힘을 갖췄다. 본인의 능력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세상과 등진 ‘엘사’의 고독한 처지도 아무런 연고 없이 세상 여기저기를 헤매는 ‘잭 프로스트’를 연상시킨다.

여러 공통점을 가진 두 작품은 흥행 실적에서는 운명을 달리했다. 28일 기준 국내 관객 수 330만명을 뛰어넘은 겨울왕국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도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북미지역 흥행실적은 911만8806만달러에 이르며 월트디즈니 최고 흥행작인 ‘라이언킹’을 넘어섰다. 반면 드림웍스가 1억4500만달러(약 1563억원)를 투입한 가디언즈는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했다.

가디언즈의 주인공 잭 프로스트(위)와 겨울왕국의 엘사(아래).


'2030' 시사회 vs '아이에서 어른까지', 욕심이 부른 참사

개봉 전부터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대를 모은 가디언즈가 흥행에 부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디언즈의 실패를 두고 일각에서는 작품 이름에 ‘가디언’이 붙으면 망한다는 속설도 나왔다. 2010년 나온 워너브러더스의 3D 애니메이션 ‘가디언의 전설’도 흥행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전문블로그 애니메이션월드네트워크(AWN)는 가디언즈가 시청자 세분화에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AWN은 ‘왜 가디언즈가 실패했나(Rise of the guardians, why did it flop)’는 글에서 드림웍스가 높은 제작비를 회수하려는 욕심으로 타겟 관객층을 지나치게 넓게 잡았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즈 영문 포스터.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려다 보니 어른이 보기에는 다소 유치하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길고 복잡했다는 평가다. 추수감사절 대목을 앞두고 나온 가족용 영화치고 지나치게 과감한 시도도 문제였다. 예컨대 가디언즈에 등장하는 산타클로스는 팔에 문신을 하고 러시아 마피아를 연상시키는 억양을 사용한다. AWN은 휴일에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부모에게 자녀의 동심을 깨는 산타클로스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디언즈와 달리 겨울왕국은 철저하게 '2030'세대에 초점을 뒀다. 지난 13일 용산 CGV에서 열린 겨울왕국 시사회는 13세 이하 아동은 입장할 수 없는 '키즈프리 시사회'였다. 겨울왕국 홍보대행사 호호호비치 관계자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로 아동용이나 가족용으로 출시된다면, 겨울왕국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살려 2030 관객층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 디즈니 최초의 자매 주인공 vs 애니메이션판 어벤저스(?)

겨울왕국의 자매 캐릭터 엘사(왼쪽)와 안나(오른쪽).

겨울왕국의 또 다른 흥행 비결은 소재의 신선함이다. 디즈니가 오랫동안 고수했던 공주와 왕자 공식을 깼다. 대신 자매 캐릭터 ‘엘사’와 ‘안나’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왕자를 악역으로 설정하면서 두 자매의 돈독한 정을 더 부각했다. 자매 관객을 무료로 초청한 ‘겨울왕국 2030 시스터 시사회’도 이 같은 효과를 노렸다.

반면 가디언즈는 애니메이션판 ‘어벤저스’라는 별칭이 있다. 비슷한 비교 대상이 있다보니 내용 전개나 소재 면에서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기 쉽다. 어벤저스는 아이언맨, 토르, 헐크 등 각종 영화 속 영웅들이 한 데 모여 악당을 물리치는 종합 히어로물이다. 가디언즈도 비슷하다. ‘잭 프로스트’를 선두로 이빨요정, 산타클로스, 부활절 토끼, 잠의 요정 등 서구권 신화 속 5명의 수호자(가디언즈)들이 악몽의 신과 맞선다.

불법유출이라는 불운도 있었다. 개봉 직전 가디언즈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흥행이 주춤했다. 가디언즈의 실패 이후 870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드림웍스는 이후 정규 직원 350명을 해고했다.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최고경영자(CEO)는 실적발표회에서 "가디언즈는 드림웍스가 2004년 애니메이션 사업부를 따로 떼낸 뒤 제작한 작품 가운데 최초로 흥행하지 못한 작품이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가디언즈예고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