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맥주 회사 벨기에의 AB인베브가 2009년 7월 오비맥주를 18억달러에 팔았다가 20일 58억달러(약 6조1700억원)라는 거금을 들여 되샀다. 5년 남짓한 사이 오비맥주의 몸값은 3배 넘게 뛰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1등 프리미엄'으로 평가한다. AB인베브가 '2위 업체'를 팔았다가 '1위 업체'를 다시 사들였다는 뜻이다. 오비맥주 측은 "최근 5년 새 오비맥주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며 "AB인베브는 성장세가 두드러진 오비맥주를 앞세워 아시아·태평양 시장 공략을 강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AB인베브의 진짜 속셈은 뭘까?

2위 업체 팔고, 1위 업체 되산 이유는?

2009년 당시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에 밀리는 국내 2위였다. '양강(兩强) 체제'인 국내 시장에서 오비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2009년 기준 43.7%로 하이트진로(56.3%)에 12%포인트 이상 뒤져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 역전됐다. 오비맥주는 2011년 말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며 15년 만에 업계 1위에 복귀했고 지금은 60% 이상의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오비맥주의 성장엔 행운도 따랐다. 오비맥주를 1등으로 견인한 대표 브랜드 '카스'는 1999년 당시 경영난을 겪던 진로로부터 인수한 브랜드다. 진로는 2005년 하이트에 인수됐다. 즉, 오비맥주는 경쟁사 하이트진로로부터 카스라는 '복덩이'를 빼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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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는 또 하이트진로가 2011년 맥주(하이트)와 소주(진로) 영업망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틈에 '반사이익'을 챙기며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AB인베브는 오비맥주 재(再)인수 배경으로 한국 시장의 성장성을 내세웠다. AB인베브는 "한국은 내수 불황에도 2009년 이후 매년 약 2%씩 성장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수입 맥주를 비롯한 고급 맥주 시장이 국내에서 매년 10% 넘게 고성장을 하는 것도 AB인베브의 재인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오비맥주 "글로벌 시장 진출 기대"

오비맥주의 전신(前身)은 1933년 설립된 쇼와기린맥주다. 1948년 동양맥주로 회사명이 바뀌었고, 1952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인수했다. 두산은 1998년 구조조정 차원에서 오비맥주를 AB인베브의 전신인 벨기에 인터브루에 팔았다.

이후 AB인베브는 2009년 미국 안호이저부시 합병 과정에서 생긴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18억달러(당시 2조3000억원)를 받고 오비맥주 지분을 사모펀드인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에 넘겼다. AB인베브는 당시 약 5억달러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이후에도 오비맥주와 AB인베브의 관계는 밀접하게 이어졌다. AB인베브는 오비맥주에 '버드와이저' '호가든' 등 자사 제품의 유통 독점 라이선스를 제공했고, 일부 제품은 오비맥주에 생산을 맡겼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AB인베브는 오비맥주의 기술을 이용하고 있고, 오비맥주는 해외 수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현재 세계 30개국에 40여종의 맥주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롯데 가세…맥주업계 불꽃 튀는 '삼국지'

오비맥주가 새 주인을 맞으면서 국내 맥주 시장의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오비맥주의 전(前) 주인인 사모펀드 KKR과 달리 AB인베브는 국내 시장을 정밀 공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롯데표 맥주'도 주요 변수이다. 롯데주류는 현재 충북 충주에 5만kL 규모의 맥주 생산라인을 짓고 있고, 2017년까지 7000억원 정도를 추가 투자해 50만kL 규모의 본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소주·위스키 등 롯데주류의 기존 영업망에 백화점·대형마트 등 막강한 롯데그룹 유통 채널이 시너지를 발휘하느냐도 주목 대상이다. 심은주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맥주업계가 삼파전으로 재편되고 수입 브랜드들까지 공격 마케팅에 가세함에 따라 올해 국내 맥주 시장에 유례없는 대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