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한 청년이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문과 출신이지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삼았고, 삼성에선 아예 SW(소프트웨어) 개발로 진로를 틀었다. 쟁쟁한 이과생들 틈바구니에서 독학(獨學)을 하며 입사 22년 만에 상무 직함을 달았다. 그리고 지난해 이 사람은 전 세계 155개국의 5000만명이 손에 쥐고 사용하는 '갤럭시S4'에 적용되는 핵심 SW를 개발했다. 갤럭시S4는 역대 삼성폰 가운데 가장 빨리 1000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작년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두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갤럭시S4에 내장된 안드로이드 시스템 SW 개발의 주역인 삼성전자 박현호(52·사진) 전무는 "갤럭시S4의 성공은 여러 후배가 밤잠 설쳐가며 내 일처럼 일해준 덕분"이라며 "솔직히 모든 순간이 힘들었지만 숱하게 외국을 오갔던 잦은 해외 출장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9일 박 전무를 비롯한 20명에게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과 모범을 보인 임직원을 선정해 시상하는 삼성의 주요 행사로 올해 20년째를 맞았다. 상금 1억원과 1직급 특별 승격 혜택을 준다.

올해 수상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던 '휴대전화 부문'에 집중됐다. 전통 시장인 미국을 비롯해 스페인·사우디아라비아·태국·터키·중국 등 신흥시장 영업·마케팅 분야 담당자들이 대거 수상했다.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회로선 폭(幅)을 줄여 용량을 늘릴까 고민할 때 과감하게 '고층 빌딩처럼 위로 쌓아올리자'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세계 최초의 '3차원 V(vertical·수직) 낸드' 메모리 개발을 이끈 삼성전자 경계현(51) 전무도 수상했다.

입사 7년차 30대 중반의 과장급 직원도 시상대에 올랐다. 2007년 입사한 삼성전자 최민경(35) 책임은 바람을 형상화한 창의적인 디자인을 에어컨(Q9000)에 적용해 국내 에어컨 시장점유율 1위 달성에 기여한 공로로 디자인상을 받았다. 1995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 창단과 함께 부임해 19년간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면서 15회 우승을 거둔 신치용(59) 감독도 특별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