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곧 비용이다. 모든 사회적 갈등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계층·이념·노사 간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지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갈등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는 27개 회원국 중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사회갈등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연간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 342조원의 72%에 달하는 수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회갈등은 단연 노사갈등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3년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25위를 차지한 가운데 노사협력은 132위로 124개의 전체 세부평가 항목 중에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의 노사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갈등지수가 지금보다 10%만 낮아지더라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5.4% 높아지고 OECD 평균수준으로만 개선되더라도 국내총생산(GDP)이 7∼21%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갈등을 얼마나 해소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선진국 진입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갈등조정시스템 없는 대한민국…春鬪에서 夏鬪까지 싸움만

노사갈등 이슈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매년 춘투(春鬪)에서 하투(夏鬪)로 이어지는 임금협상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국내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가 입는 손실이 막대하다. 노사갈등 해결을 위해선 건설적인 논의의 장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많지만 우리의 노사관계는 거꾸로다. 노조는 투쟁만능주의에 빠져 무리한 요구를 남발하고 회사는 원칙 없는 대응으로 사태를 봉합하는데 급급하다. 공정한 중재와 엄정한 법 집행으로 노사관계를 상생으로 이끌어야 할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훈수로 대립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귀족노조'와 법 판결조차 지키지 않는 사측의 태도는 꼭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도별 노사분규 발생건수(출처: 고용노동부)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의 지난해 상반기 해외 수출물량은 재작년 같은 기간보다 10%나 줄었다. 2009년 이후 4년 만의 첫 감소다. 현대차 노조가 상반기에 벌인 휴일 특근 거부로 인한 생산차질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현대차의 국내 공장 전체 생산량도 7.2% 줄었다. 그런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상여금 800% 지급, 퇴직금 누진제 보상, 정년 61세 연장, 완전 고용보장 합의서 체결, 대학 미진학 자녀의 취업 지원을 위한 기술취득 지원금 지원, 노조 간부 면책특권 강화 등을 요구했다. 현대차는 이미 정규직 신규 채용시 면접 대상자의 25%를 정년 퇴직자나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 자녀에게 할당한다. '귀족노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노조가 해마다 파업을 강행하면 국가 전체의 신인도가 추락할 수 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듯 대형사업장의 노조도 이제는 사회적 책임감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파업이라는 무기로 사측을 궁지에 몰아넣어 원하는 것을 챙기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사측의 일상적인 '법 무시'도 심각하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불법파견 사내하청을 이용하고 있다.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도 허언이 되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에 정부와 사측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노사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고소·고발, 손해배상·가압류, 폭력사태, 점거 농성 등 노사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대화는 더욱 어려워지고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는 지적이다.

노사 간 신뢰지수(출처: 고용노동부)

전문가들은 갈등조정시스템의 제도화를 주문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우리 사회는 노사관계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이 너무 격화돼 있는 상황"이라며 "노사관계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데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사간 극심한 힘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 갈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장은 "갈등관리기본법을 제정해 전 정부적 차원의 대응시스템을 구축하고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DR은 법원의 소송 대신 이해당사자간 중재와 조정을 통해 화해를 유도하는 분쟁해결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언론중재위원회나 대한상사중재원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의 중재기능을 들 수 있다.

◆ 노조는 임금삭감·사측은 고용보장…독일병 치유한 '노사공동결정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산별노조 조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노동쟁의는 매우 드문 나라로 꼽힌다. 1992년 2458개 사업장의 60만명 가까운 근로자가 파업에 참가할 정도로 적지 않았던 독일의 노동쟁의는 2011년 158개 사업장 1만1282명으로 줄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Mitbestimmung)'를 파업 감소의 이유로 꼽는다. 독일은 1000명 이상 종업원이 있는 대기업의 경우 사용자 50%, 근로자 50%로 구성된 감독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하고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근로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순기능을 하면서 독일의 산업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독일의 연도별 파업 현황(출처: 독일 노동부)

가령 폴크스바겐 노사는 매주 한 차례씩 회동을 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폴크스바겐은 강성노조로 유명한 세계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IG-Metall) 소속이다. 폴크스바겐 임직원 90% 이상이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다. 그럼에도 10년간 한 차례 파업 없이 노사관계가 원만히 유지되는 것은 서로 소통이 잘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노사협약에서는 회사 측이 10만3000명의 고용을 2011년까지 보장했다. 노조는 2007년까지 임금 동결과 근로시간의 유연성 확대, 이중임금제의 수용 등 비용절감과 생산유연성 향상을 위한 협조를 약속했다. 2006년 협약에서 임금의 추가 지급 없이 근무시간을 28.8시간에서 33시간으로 연장하는 것에 합의하기도 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 경영 참여를 통해 마련된 신뢰는 노사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며 "비록 느리지만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한 사항은 양측의 이해가 모두 일치한 것인 만큼 추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갈등해결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강원 경실련 갈등해소센터장은 "갈등조정을 위한 민관 협치가 중요하다"며 "정부의 실질적 의지와 기업의 사회적책임 이행,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측이 과도하게 법의 힘을 이용해 노조를 압박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갈등을 억누르는 것을 뿐 더 큰 갈등을 초래해 사측도 잃는 게 더 많아진다"며 "사측이 노조를 먼저 생산ㆍ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자율적인 이해관계 조정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