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도시가스를 시작으로 공공요금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번 인상 러시가 예년과 다른 점은 부채 감축에 대한 압박을 받는 공기업과 이를 견제하는 정부가 한목소리로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방만한 경영으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이 자구(自救) 노력은 없이 기습적인 요금 인상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안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말 어수선할 때 기습 인상한 도시가스 요금

공공부문 요금 인상의 출발은 가스 요금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새해 1월 1일부터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5.8%(서울시 소매가 기준) 올린다고 발표했다.

발표 시점도 국민인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국회의 예산안·법안 처리, 철도 파업 후유증 등으로 어수선했던 작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군사작전하듯 전격 발표한 것. 지난해 2월과 8월에 평균 4.4%, 0.5% 인상하고도 또 올린 셈인데, 많은 소비자는 '왜 다시 평균 5.8%를 올려야 하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각 가구는 동절기 기준 가스비를 매달 평균 4300원가량 추가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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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가스공사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원료비 인상분을 장기간 반영하지 않으면서 가스공사의 재무 구조가 크게 나빠졌다"고 주장한다. 가스 요금이 연 6%가량 오르면 국민 부담은 연간 2조원가량 늘어난다. 가스공사로서는 그만큼 매출이 늘어나 부채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자체 구조조정 노력은 없이 일방적인 요금 인상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회사의 작년 기준 부채는 32조원을 넘어 부채 비율이 385%에 이른다. 에너지공기업 가운데 부채비율이 가장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장의 연봉은 성과급을 포함해 재작년 2억9867만원에 달했고 직원 1인당 평균 연봉도 8030만원으로 에너지공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지난 3년간(2011년 1월~2013년 9월) 금융 파생상품 거래로 입은 손실이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기간별로 환헤지를 하는 과정에서 재무제표상 손실이 나타났을 뿐 장기적으로는 이익도 손실도 나지 않는 구조"라고 해명했다.

택시와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도 5개월 만에 올랐다. LPG 수입·판매사인 E1은 지난 31일 국제가격 급등으로 이달 프로판과 부탄 공급가격을 ㎏당 99원씩 인상한다고 밝혔다. 전월에 비해 7.7% 오른 가격이다.

택배·철도 요금 등도 줄줄이 인상 대기 중이다. 우체국의 경우 택배 요금을 2월부터 인상할 예정이다. 구정 연휴 직후다. 5~10kg은 현행 5000원에서 500원(10% 인상) 올라 5500원, 10~20kg은 현행 6000원에서 1000원(17%)이 올라 7000원, 20~30kg은 현행 7000원에서 1500원(21%) 올라 8500원이 된다. 소포 요금 인상은 지난 2005년 1월 이후 9년 만이다. 코레일도 올해 철도 요금 5% 인상을 내부 목표로 정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 요금도 올 들어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지난해 11월 전기 요금을 평균 5.4% 올린 데 이어 올해도 '요금 현실화'를 이유로 인상안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물가 인상은 정부가 주도 가능성

일각에선 공공기업의 기습 인상을 산업부 등 정부가 방조(幇助)를 넘어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공공요금 인상에 대해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 요금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공기업의 경우 그간 자구책을 여러 번 발표했지만, 요금 단가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다 보니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며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만큼 공기업이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요금 인상에 대한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