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19일 비상이 걸렸다.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난 18일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A사는 직원 수가 200명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20억원가량 되는 회사다. 하지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이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는 연간 33억원에서 52억원으로 19억원가량이 늘어난다. 김모(60) 대표는 "1년치 영업이익이 고스란히 인건비로 나가면 무슨 돈으로 설비투자를 하고 직원을 뽑겠느냐"며 "노조가 내년 임금 인상까지 요구할까 봐 눈앞이 막막하다"고 했다.

대법원이 지난 18일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전원합의체 선고를 내리면서 산업계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가 많은 제조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등 경영 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로 인한 통상임금 소급 적용을 막기 위해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信義則)'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기준이 모호해 이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이 격화되고 대규모 소송도 줄을 이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앙 같은 상황"

산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전자업종의 한 중견 제조업체 관계자는 "공장을 갖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추가로 요구되는 재원이 얼마가 될지조차 예상할 수 없는 한마디로 재앙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소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대기업·중견기업은 연봉제나 성과급 제도를 도입한 곳이 많아 파장이 덜하지만, 중소기업은 노조(勞組)가 거의 없는 데다 성과급보다는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현재 12.6%에서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17.5%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기중앙회 측은 "중소기업은 최소 14조3000억원을 일시에 부담하고 매년 3조4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며 "일자리와 투자가 동시에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대한상의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중소기업에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부담이 높은 건설업계도 한숨이 나오고 있다. 연봉제로 전환하지 않았거나 전환했더라도 각종 수당이 많은 업체들은 재원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영덕 박사는 "중소 건설사 중엔 연봉제로 바꿨어도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 다양한 수당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 "정기적인 성격의 수당을 비정기적으로 바꾸고,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높이는 등 임금 체계의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도 업무 특성상 주말·야간 근무가 많고,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각종 수당의 종류도 많아 인건비 상승이 두 자릿수(10%)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장 근로가 많은 자동차·조선업계도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고 있다.

애매한 신의칙 부분, 소송 급증할 듯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내리면서 거론한 신의칙 부분도 노사관계에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물론 법원 안팎에서도 '신의칙'을 위배했는지 여부를 정하는 기준이 모호해 하급심의 판단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의칙'이란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이나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노사(勞使)가 서로 동의하에 합의를 했음에도 어느 한 쪽이 권리 행사를 주장하면서 마음대로 합의 내용을 깨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서로 암묵적 동의하에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했음에도 노조가 이를 깨버리고 추가 임금을 요구해 기업이 '경영상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되면 이는 신의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가 암묵적 동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노사 간에 법정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대법원이 신의칙을 거론하면서 '경영상 중대한 차질'이라는 개념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결국 하급심에서 이를 판단할 때 혼란을 빚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동계에서는 내년 봄 임금 교섭 과정에서 '신의칙'에 대한 해석을 놓고 큰 혼란에 빠지고,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이번 판결은 노동계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노조가 통상임금 판결에 따라 덤으로 주어진 것을 소급해서 받기 위해 줄줄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