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경기도 이천 공장 증설에 8년간 15조원을 투자키로 결정하면서 전 세계 D램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선두 삼성전자를 쫓아가는 2등 전략을 취했던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삼성전자와 함께 업계 '투 톱(Two Top)'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을 통신·에너지 외에 제3의 주력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SK그룹의 중장기 전략과도 맥이 닿는다.

본지 12월 18일자 A1면

D램 산업은 장기간의 전 세계적인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미국 마이크론 등 3개 업체의 과점(寡占) 체제로 굳어져 왔다. 1990년대 15개에 달하던 D램 생산업체들은 끝없는 증산 경쟁인 '치킨게임'(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아 모두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통해 대부분 사라졌다. 올 3분기(7~9월) 판매실적을 보면 SK하이닉스는 시장 점유율 28.5%로 삼성전자(37.1%)에 8.6%포인트 뒤진 2위를 기록했다. 올 7월 일본 엘피다를 인수합병한 미국 마이크론은 26.2%다.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더한 점유율은 65.6%이며, 여기에 마이크론을 더하면 3개 회사가 91.8%이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공장에서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천 공장에 D램 생산 라인 2개를 신설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투자계획을 확정했다.

◇SK 베팅은 삼성과 경쟁

공식 발표만을 남겨놓은 SK하이닉스의 이천 공장 증설계획을 보면 복층 공장에 층마다 하나씩 생산 라인 2개가 들어간다. 각 라인은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를 월 10만장 투입할 수 있는 규모다. SK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 "웨이퍼 10만장을 소화하는 라인 하나를 건설하는 데 약 7조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현재 이천 공장은 웨이퍼를 월 13만장 사용한다.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공장도 비슷한 규모다. 투자가 끝나는 2021년이면 산술적으로 하이닉스의 D램 생산량이 80%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경우 현재 신규 공장 증설 계획은 없다. 삼성이 가장 최근 D램 라인을 새로 가동한 것은 2011년 11월 경기 화성의 16라인이다.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이천에서 주력인 D램 반도체 라인을 새로 짓는 것은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이천시 기존 공장은 1990년대 200mm 웨이퍼로 가동을 시작해 지난 2005년 300mm로 개조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운영한 지 15년 이상 지나면서 설비 노후에 따른 효율성 한계가 내부에서 지적돼왔다. 이에 따라 이번에 기존 운영되고 있는 라인을 새롭게 신축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SK그룹은 2011년 말 하이닉스를 그룹에 편입한 직후 이천 공장 증설을 극비리에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이번 투자 결정은 최근 호실적에도 영향을 받았다.올해 D램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이 회사 영업이익만 3조원을 넘길 것이 확실시되고 내년엔 4조원 이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올 1~3분기(1~9월) 누적 수출액만 9조99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5% 늘어났다. 최근 그룹 승진 인사에서 전체 143명 임원급 승진자 중 43명이 하이닉스에서 나온 것도 앞으로 하이닉스를 삼성전자와 함께 글로벌 양 톱으로 키우겠다는 그룹 측 복안이라는 설명이다.

◇치킨게임은 하지 않을 듯

일각에서는 D램 공급 과잉 우려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 삼성 등 3곳이 시장을 나눠 먹는 체제가 됐는데 과거처럼 치킨게임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이닉스가 먼저 치고 나간다고 삼성전자가 맞대응으로 D램 라인을 증축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SK하이닉스 측은 "기존 공장에 있는 설비 일부를 새 생산라인으로 이전하는 것이어서 실제 생산량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제 D램 시장 가격은 예전처럼 변동폭이 크지 않고 안정되게 유지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D램(DRAM·DynamicRandom Access Memory)

PC·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시장 규모는 연간 40조원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