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전(前) 삼성전자 사장이 케이티(KT) 차기 CEO 후보로 선임된 것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황 전 사장이 후보로 선임되기 전 이미 청와대의 마음이 최종적으로 '황'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동향인 부산 출신인 점도 고려됐지만 IT공룡인 삼성전자 출신의 유명한 전문 경영인이란 점이 눈에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 내정자는 발탁과정에서 큰 후광을 입은 삼성전자의 이미지를 오히려 서둘러 털어야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KT와 삼성전자가 사사건건 다른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삼성맨' 출신 황 내정자가 삼성편에 서서 그간의 정책을 뒤집을 경우 취임 초기부터 내부 반발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KT 고위 관계자는 "최근 5년간 KT와 삼성전자의 관계는 사실상 줄타기나 나름 없었다"고 말했다.

KT와 삼성전자 사이가 눈에 띄게 틀어진 것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T는 애플의 아이폰3GS를 국내 통신사로는 유일하게 국내에 단독 출시했다. 애플 아이폰의 막강한 마케팅 능력과 소비자의 요구를 감지한 삼성전자는 KT측에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이 회장은 아이폰 출시를 그대로 밀어부쳐 큰 성공을 봤다. SK텔레콤은 당시 삼성전자의 얘기만 믿다가 초창기 스마트폰 판매 주도권을 KT에 빼앗기며 쓴 맛을 봤다. 삼성전자는 그 사건 이후 SK텔레콤에 대한 미케팅 지원을 늘렸고 양측의 관계는 더욱 냉각됐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0년 스마트폰 '옴니아'를 출시하면서 KT에는 옴니아 브랜드를 떼어버린 채 공급했고, 이에 대해 KT는 2011년 아이폰3GS 사용자를 상대로 아이폰4S 단말기값을 파격적으로 할인하는 프로모션으로 맞섰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도 확연하다. KT를 비롯한 통신사들은 과도한 단말기값과 제조사 보조금이 경쟁 과열을 낳는 주요 원인이라며 삼성전자를 포함한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측은 정부 보고 내용 가운데 단말기 원가를 포함한 일부 자료는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법안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은 이달 5일 열린 정부와 통신사 관계자들과 간담회에서 단통법 조항을 조목조목 집어가며 "우려되는 사안이 있고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단통법에 반대의견을 냈다. 반면 이 자리에 참석한 표현명 KT 사장은 국내 단말기 유통시장이 소비자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단통법에 적극적인 찬성표를 던졌다.

전문가들은 황창규 후보가 주주총회를 거쳐 KT 새 CEO에 취임하면 KT가 단통법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단통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친정'의 입장을 완전히 저버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통법에 대해 KT가 갑자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찬성 입장에서 한발 물러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통신망 사용대가 문제도 양측이 최근 가장 첨예한 입장차를 보인 부분이다. KT는 지난해 삼성전자의 스마트TV를 보는 가입자들의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제한하는 초강수를 뒀다. 스마트TV가 인터넷TV(IPTV)보다 최소 5배 이상의 트래픽을 유발하면서 인터넷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며 망 사용대가를 내야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삼성전자측은 이에 대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면서 양측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정부가 최근 합리적 트래픽 관리 지침을 마련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망 사용대가에 대한 양측 입장은 여전히 뚜렷이 나뉜다.

삼성전자 장비가 공급된 와이브로 사업 역시 황 내정자의 KT 독립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2006년 KT와 SK텔레콤이 와이브로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황금알을 낳은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와이브로의 기술개발에는 삼성전자가 참여했고 공급된 시설장비 가운데 삼성전자가 납품한 장비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약 7년이 지났지만 두 이통사를 합한 가입자는 100만명에 머문다. 수익성도 악화돼 2009년 1290억원이던 매출은 이미 1000억원대로 떨어졌다. 올해는 1000억원 밑으로 내려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수익성이 악화되는 와이브로 사업을 서둘러 접고 새로운 서비스에 주파수를 할당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도 KT가 자발적으로 와이브로 주파수를 반납하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이다.

황 내정자로서는 와이브로 사업 철수를 결정할 경우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삼성전자 기술의 실패를 인정하는 셈이어서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KT 일각에서는 황 후보가 차기 CEO에 확정되면 KT가 삼성전자에 종속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출신인 황 전 사장이 친정인 삼성전자의 입김을 배제하고 독립적으로 KT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삼성전자 출신의 CEO를 영입이 과거의 불편했던 관계를 개선하고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발판으로 국내 통신 시장에서 재도약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KT관계자는 "황 전 사장은 삼성전자 시절 황의 법칙을 내놓으며 개인 브랜드와 글로벌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며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KT입장에선 긍정적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동안 소원했던 삼성전자와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단말기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