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지난 2011년 출시해 팔고 있는 3세대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모델은 L당 연비가 21.0㎞에 이른다. 준중형급이지만 수동 변속기를 쓰는 국내 소형차보다 더 연비가 좋다. 이런 뛰어난 연비 덕분에 프리우스는 올 들어 10월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70만대가 팔렸다.

국내 수입차 시장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BMW 520d(5시리즈 디젤 모델)는 대당 가격이 6000만원대에 이르는 고급 차지만 연비는 16.9㎞/L나 된다. 현대차 아반떼 1.6L 디젤의 16.2㎞/L(자동변속기 기준)보다 더 연료 효율이 좋다.

일본·독일의 완성 차 업계는 1990년대 중반부터 친환경 차량 시장에 도전해 기술이 완성 단계에 올라와 있다. 상업적으로도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했다. 상대적으로 상업화가 늦은 전기차 분야에서도 닛산 '리프'나 BMW의 'i3' 같은 글로벌 히트작이 속출하고 있다. 현대차가 시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훌쩍 앞서 나가 버린 것이다.

기아자동차가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더K 서울호텔’에서‘K7 하이브리드 700h(왼쪽)’와 일부 기능을 변경한‘K5 하이브리드 500h(오른쪽)’를 출시했다. 현대차도 이날부터 그랜저 하이브리드 판매에 돌입하는 등 국산 하이브리드 차종이 크게 늘었다.

전 세계 각국의 정책도 일본·독일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연비가 좋고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차에 대해서는 보조금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있고, 반대로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차량에 대해서는 각종 부담금을 물리는 제도가 검토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오는 2015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쏘나타보다 많은 차를 살 때 최대 수백만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2024년까지 수도권 전체 등록 차의 20%(약 170만대)를 친환경차로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질주하는 獨·日 친환경차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대·기아차는 올 들어 하이브리드와 디젤 승용차 분야에서 잇달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며 독일·일본의 친환경차 따라잡기에 나섰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친환경차 분야에서 더 이상 뒤처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5일과 16일 잇달아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K7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이로써 현대·기아차는 준중형인 아반떼 하이브리드와 중형 쏘나타ㆍK5 하이브리드에 이어, 준대형 하이브리드까지 5종의 하이브리드 차량을 갖추게 됐다.

그랜저와 K7 하이브리드는 2.4L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사용한 모델로 평균 연비가 16㎞/L 수준이다. 가격은 3440만~3460만원으로 책정됐다. 현대차는 이 차를 출시하면서 구매 후 30일 이내에 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반 차량으로 바꿔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현대차 측은 "친환경차 시장에서 해외 경쟁 업체에 밀리지 않기 위해 하이브리드 제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또 다른 친환경차로 연비가 높고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디젤 승용차 모델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 8월 아반떼 디젤을 선보였고, 이달 초에는 K3도 디젤차 모델을 내놓았다. 현대차는 몇 년 전만 해도 "진동·소음 때문에 소비자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디젤 승용차 개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수입 디젤 승용차가 큰 인기를 끌자 디젤 승용차 출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하이브리드·디젤승용차 세계 기술과 큰 격차

하지만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는 아직 독일·일본 수준과 큰 격차가 있다. 현대·기아차가 팔고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 중 가장 연비가 좋은 것은 쏘나타·K5 하이브리드는 16.8㎞/L이다. 이는 1997년 세계 최초로 나온 도요타의 1세대 프리우스 연비 17.4㎞/L(미국 기준)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프리우스가 하이브리드 전용으로 개발된 차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와 세계 최고 친환경차 업체의 기술 격차가 아직 크다는 현실이 새삼 드러나고 있다.

기술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판매 실적도 크게 떨어진다. 현대·기아차의 올해 국내외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5만대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현대·기아차 전체 판매량의 0.8%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에 하이브리드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은 연간 15만대 규모의 생산 라인을 지어놨지만 가동률이 저조한 형편이다.

반면 하이브리드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도요타는 올 들어 10월까지 107만대의 하이브리드를 팔면서 판매 신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친환경차의 또 다른 축인 전기차도 난관에 부딪혀 있다. 2011년 양산형 전기차 '레이 EV'를 만들었지만, 국내 공공 기관에 할당해 판매한 것 외에 일반 판로는 개척하지 못했다. 테슬라의 '모델S'와 닛산 '리프' 등이 연간 1만~2만대를 팔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2015년 시행 저탄소 협력금 제도도 부담

정부가 2015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저탄소 협력금 제도’도 현대·기아차에 부담이다.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겐 보조금을,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는 소비자는 부담금을 내게 하는 제도다. 경차·소형차 구매자는 수백만원의 보조금을 받지만, 반대로 대형차 구매자는 그만큼의 부담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환경부 박연재 교통환경과장은 “배출가스를 줄이면서 연비를 높이는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미국·유럽 등 세계적으로 공통된 추세”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hybrid)차

엔진과 전기모터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연비를 높인 차다. 배터리·모터 등이 추가되기 때문에 차량 가격이 다소 비싸진다.

☞전기차(Electric Vehicle)

엔진 같은 내연기관 없이 배터리를 에너지원으로 모터를 돌려 움직인다.

☞수소연료전지차(Fuel Cell Vehicle)

수소와 공기 중 산소를 반응시켜 만든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스 배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