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던 두산그룹이 이달 들어 두산중공업 자사주 매각 등 굵직한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내년 세계 경기 회복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재무구조를 강화, 새 사업 기회가 생기면 신속히 대응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증권가에선 선제적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주력 계열사의 실적 회복 시기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지난 11일 보유 중인 자사주(自社株) 1600만주(전체 발행 주식의 15.8%) 가운데 950만주를 시간 외 거래를 통해 매각했다. 총 매각 대금은 11일 종가(3만3500원) 기준으로 3183억원이다. 두산중공업은 이번 자사주 매각으로 부채비율(별도 기준)이 216%에서 200% 안팎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두산인프라코어도 12일 4억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글로벌주식예탁증서(GDR) 발행에 성공했다. 이번에 발행하는 GDR은 오는 20일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거래가 시작될 예정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GDR 발행으로 부채비율(별도 기준)이 229%에서 170% 안팎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GDR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주로 외화 표시 부채 상환 등에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GDR은 한국 증시에 직접 투자할 수 없는 외국인 투자자를 위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유가증권이다.
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震源地)인 두산건설도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5일 주식 10주를 1주로 감자(減資)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13일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2667만주 발행을 결정할 예정이다. 'RCPS'는 일정 기간까지 배당금을 받다 만기가 되면 주식으로 상환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이다. 두산건설은 내년 초 발행 대금으로 단기 차입금을 상환, 부채비율을 222%에서 150%대로 낮출 계획이다.
중공업·인프라코어·건설 등 주력 계열사가 잇따라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는 것은 무엇보다 시중에 돌고 있는 유동성 위기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두산 관계자는 "그룹 전체적으로 보유한 현금·적금 등 현금성 자산이 올해 2조5000억원 밑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두산건설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진 상황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내년 세계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선제적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경기 회복기를 대비하지 않은 기업은 막상 경기 회복기가 오더라도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지금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나설 시점"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두산그룹이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사실상 완료함에 따라 유동성 위기설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중공업과 인프라코어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신규 수주 목표치를 10조원으로 설정했지만, 지난 3분기까지 신규 수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줄어든 2조7000억원에 그쳤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건설 장비 시장 침체의 여파로 올해 들어 지난 3분기까지 750억원이 넘는 누적 손실을 기록 중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