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시공한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호텔 전경.

쌍용건설의 일부 채권은행이 쌍용건설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을 신청하라고 요구했다. 군인공제회 등 비협약채권자들이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채권단만 계속 지원하는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쌍용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다수의 해외 사업 수주가 취소되고 수많은 협력업체의 피해가 예상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쌍용건설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A은행 관계자는 최근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을 만나 "쌍용건설이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는 채권단이나 주주도 신청할 수 있지만 채권단은 올 중순 법정관리보다 워크아웃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뒤늦게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채권단이 신규자금을 투입해도 비협약채권자들이 돈을 다 빼가는 구조"라며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해서 모든 채무를 한꺼번에 정리하고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군인공제회는 쌍용건설의 남양주 사업장에 850억원을 대출했는데 만기가 지나면서 연체이자가 발생해 원리금이 총 1235억원으로 늘었다. 군인공제회는 1235억원을 모두 받겠다는 입장이다. B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그동안 투입했던 자금을 쌍용건설 주식으로 전환하고 신규자금까지 투입하는데 군인공제회가 연체이자까지 받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쌍용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모든 채권과 채무가 동결돼 협력업체의 피해가 예상된다. 쌍용건설이 수천 개의 협력업체에 발행한 어음은 수천억원 규모다. 또 16개 해외 현장 중 일부는 수주가 취소되고 수주 시 발주처로부터 받았던 선수금 등은 모두 돌려줘야 할 가능성도 있다. 쌍용건설이 발주처에 발급한 계약이행보증채권 등은 총 1조원 이상이다.

일부 채권단이 쌍용건설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라고 요구했지만 실제 법정관리로 갈지는 미지수다. 쌍용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비협약채권자들이 끝까지 협조를 안 하고 다른 채권은행들도 신규자금 지원을 거절하면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그 단계를 논의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쌍용건설이 잘못되면 모두 손해를 보기 때문에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예일회계법인은 최근 쌍용건설에 대한 실사(實査) 결과 쌍용건설이 상장폐지를 면하려면 연말까지 5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금융회사가 기업에 빌려준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기업의 부채를 조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채권단이 가진 무담보 채권은 3200억원으로 나머지 1800억원은 비협약채권자들이 출자전환에 동참하거나 채권단이 1800억원을 신규로 지원하고 출자전환해야 한다. 채권단은 1800억원을 신규로 지원하고 이 돈을 출자전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쌍용건설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사업장의 오피스와 오피스텔을 매각하기 위해 KB부동산신탁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금액은 25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쌍용건설은 이 사업의 도급 시공사로 참여했으나 시행사가 어려워져 지급보증을 서면서 대출금을 떠안게 됐다. 동자동 사업장은 29층짜리, 30층짜리 등 총 2개 동(棟)으로 구성됐고 호텔, 오피스,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호텔과 일부 오피스는 맥쿼리자산운용이 961억원에 매입했다.

쌍용건설이 동자동 사업장의 오피스와 오피스텔을 KB부동산신탁에 매각하면 대출금을 갚고 일부 공사대금을 회수할 전망이다. 우리은행, 농협 등 이 사업장에 대출한 금융사도 대출금을 회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