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노믹스의 결과물인 엔저 공세가 더욱 맹렬해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100엔당 원화환율(원·엔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아베노믹스 이후 1년간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면 수출업계의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원·엔 환율 1020원대 진입…내년 900원대 전망 대세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4원 오른 1061.2원에 마감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오후 4시18분 현재 엔·달러 환율은 103.17엔을 기록 중이다. 엔 달러 환율이 103엔을 넘어선 것은 지난 5월23일 이래 6개월만이다. 엔·달러 환율은 일본은행(BOJ)이 물가상승률 목표치(2%)를 달성하기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에 2008년 10월 이후 최고치로 올랐다.

원·엔 재정환율(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비교해서 구한 값)은 1027.44원으로 2008년 9월 이후 5년 2개월만에 1020원대에 진입했다.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원·엔 환율이 내년 중순쯤 1000원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4월쯤 소비세 인상이 실제로 단행되면 일본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양적완화에 더 공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JP모건·모건스탠리 ·크레디트스위스 등 10개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내년 3분기에는 원·엔 환율이 평균 996원까지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데다 자금 유입이 좋은 상황이어서 원화값이 당초 전망보다 올라가고 있다"며 "원엔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지면 수출 전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엔화 약세보다 원화 강세가 더욱 문제"라며 "당장 지금보다 20~30원 정도는 얼마든지 내려갈수 있을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원엔환율이 900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수출 타격 가시화되나 …업종별 차별화 예상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과거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동시에 진행된 것은 1988~1990년, 2004~2007년 두 차례있었다. 첫번째 시기에는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로 우리 수출이 둔화됐으나 두번째 시기에는 세계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수출이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 경제는 내년에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란 예상이 많지만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전만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상황이 유리하게만 전개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원고-엔저가 장기화되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이자 일본과 경합하는 자동차 등에서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임희정 연구위원은 "자동차는 엔고에 따른 가격경쟁력에 힘입어 미국 시장의 점유율을 높였다"며 "상황이 바뀌면 가격 효과가 빠지면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 1~10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일본 도요타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어난 반면 현대ㆍ기아차는 판매량이 0.9% 줄었다.

다만 과거와 비교해 우리나라가 일본과 경쟁하는 주요 수출 품목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환율 충격을 일방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가령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출 품목인 선박은 일본과 경쟁하지 않을 뿐더러, 스마트폰 등 IT는 경쟁 우위에 있다"며 "엔저 충격은 업종에 따라 다를 것으로 예상되며, 총수출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외환 당국은 환율 불안정에 대응할 수 있는 상시대응체제를 구축하고, 기업들은 달러화로 편중된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올 3분기 기준 수출 결제통화 비중은 달러화 86.0%, 유로화 5.4%, 엔화 3.6%, 원화 1.9%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