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진 지음ㅣ부키ㅣ320쪽ㅣ1만3000원

친절한 화학교과서

언론사 기자 채용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글쓰기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쉽게 쓰라는 것이다. 수습 기자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훈련을 받고 또 받는다. 아무리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라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은 교육 현장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어려운 원리를 얼마나 쉬운 말로 알아듣게 설명하느냐는 교육 효과를 크게 좌우한다.

쉽게 설명하면 과학도 그리 어려운 과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 엄마가 중학생 딸을 위해 책 쓰기에 도전했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익힌 글쓰기 실력과 대학 전공인 화학 지식, 여기에 천성적으로 갖고 있던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더해져 나온 책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영재 교육을 했던 경험도 있다. 특히 대학 시절에는 화학을 어려워하던 동생을 위해 화학 노트를 만들고, 대학 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도록 도운 일이 있다. 당시의 화학 노트가 책으로 다시 나온 셈이다. 감수는 대원국제중학교 과학교사인 김형진씨가 맡아 혹시 있을 수 있는 과학적 오류를 검증했다.

책은 중학교 과학 교과서 내용 중 화학 분야를 따로 뽑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형태로 쓰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기존에 보던 교과서나 참고서의 느낌은 하나도 없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쓰여 글이 술술 읽힌다. 저자는 화학이 시험 보기 전에 외웠다가 시험이 지나면 잊고 마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각종 용어와 법칙을 예를 들어가며 자녀에게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읽다 보면 실제 딸에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육성을 듣고 있는 듯하다. 특히 중학교 교과서의 화학은 고체, 액체, 기체 같은 물질의 상태와 원자와 분자, 이온 등, 계산 보다는 개념을 정립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기초를 잘 닦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설명한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탁월한 점은 학생들이 헷갈릴 만한 것들을 미리 알고 똑 부러지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액체는 흐르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외운 학생은 언뜻 보면 고체 같은데 쏟아보면 물처럼 줄줄 흐르는 밀가루를 보고 액체인지 고체인지 헷갈릴 수 있다. 이런 때 저자는 밀가루는 알갱이가 아주 작은 고체들이 모인 거라 흐르는 성질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아니라고 설명하며, 돋보기로 자세히 보면 밀가루는 알갱이가 보이지만 물은 알갱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알려준다. 액체는 알갱이를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책 중간 중간에는 쉽게 풀어볼 수 있는 문제들도 들어가 있는데, 문제집을 푼다는 느낌 보다는 방금 읽은 것을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로 구성해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을 하는 효과를 거두도록 했다. 적절히 들어간 표와 그림, 말하는 듯한 문체는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내용을 한결 부드럽게 바꿔줬다.

단숨에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이 책은 부모가 먼저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배운 내용이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다, 자녀와 과학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지금 무엇을 공부하고 있으며 어떤 것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는지를 아는 부모는 자녀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덤으로 이 책에는 물에 젖은 책이 쭈글쭈글해지지 않게 하는 방법 같이 일상 생활에 필요한 화학 지식도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