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국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276명으로 구성된 '아이스큐브(IceCube)' 연구진은 지난주 태양계 밖에서 별이 폭발한 흔적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 하늘을 본다. 하지만 이번 연구의 무대는 만년설이 다져진 남극 깊숙한 곳에 있는 태고(太古)의 얼음이었다. 그들이 얼음 속에서 본 것은 '유령 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 우주의 유령은 어떻게 남극에 나타났을까.

1초에 수조개씩 지구 통과하는 유령

중성미자는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이다. 우주가 탄생한 빅뱅(Big Bang·대폭발) 직후에도 나왔고,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이나 원자력발전소의 핵분열에서도 출현한다. 유령 입자로 불리는 것은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태양에서 온 중성미자가 1초에 수조개씩 지구를 통과한다.

우주에선 다른 입자들도 쏟아져 들어오지만, 대부분 지구 땅속을 지나면서 다른 물질과 반응해 사라져 버린다. 반면, 유령 입자인 중성미자는 지구를 그냥 통과한다. 극히 일부만 물속의 산소나 수소 원자와 부딪쳐 흔적을 남긴다. 1980년대 일본 과학자들은 폐광 깊은 곳에 물을 가득 채워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찾아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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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큐브 연구자들은 물 대신 남극의 얼음을 택했다. 아이스큐브란 말은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남극의 '얼음 1㎦'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물이 크면 고기를 잡을 확률이 높다. 연구진은 남극에 구멍을 86개 뚫어 깊이 1450~2450m 사이에 광센서를 각각 수백개씩 단 줄을 매달았다. 중성미자가 얼음 속 수소나 산소 원자와 부딪치면 전기를 띤 또 다른 기본 입자를 만든다. 이 입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빛이 나는데, 광센서가 이를 포착해 지상에 있는 연구실로 보낸다.

태양계 밖 별의 폭발 지점 찾아내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지난 22일자 사이언스지에서 "40년의 시도 끝에 태양계 밖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 28개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각각의 중성미자는 에너지가 30조 전자볼트를 넘었다. 작은 건전지 20조개를 연결해야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다. 김수봉 서울대 교수(물리천문학부)는 "원전이나 태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에 비하면 수백만배의 에너지"라며 "태양계 밖 먼 우주에서 별이 폭발할 때 나온 중성미자여야 그 정도 에너지를 갖는다"고 말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는 거의 일직선으로 지구까지 도달한다.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빛의 흔적을 통해 중성미자의 진행각도를 1도 이내로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수봉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가 중성미자라는 총알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인데 반해, 아이스큐브는 이 총알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성미자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이므로, 그 특성을 알아내면 어떻게 우주가 탄생했는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찾은 고에너지 중성미자는 별들이 충돌하고 폭발하는 곳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우주의 기원뿐 아니라 진화과정까지 탐색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성미자 연구가 입자물리학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천문학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미국 하와이대의 존 리어네드 교수는 사이언스지 인터뷰에서 "20년 뒤면 '2013년의 이 연구 발표가 중성미자 천문학의 시작이었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큐브 연구진은 중성미자 검출장치의 크기를 지금보다 최소한 3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미 국립과학재단에 연구비 2억7200만달러를 신청했다. 유럽에서는 지중해에 아이스큐브보다 5배나 큰 중성미자 검출장치를 세울 계획이다.

천체망원경 땅에 대고 우주 보는 셈

아이스큐브의 모태(母胎)가 된 아만다 프로젝트의 로고는 펭귄이 천체망원경을 땅에 대고 보는 모습이다. 하늘이 아닌 땅으로 천체망원경을 향한 것은 남극 얼음에서 포착한 중성미자가 하늘이 아닌 땅에서 솟아났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는 남극의 얼음 위나 아래에서 다 올 수 있다. 하지만 남극 바로 위에서 오는 중성미자는 다른 우주입자와 섞여 구분이 어렵다.

반면 지구 반대편에서 오면 다른 입자들은 지구를 관통하면서 대부분 걸러지고,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중성미자만 남는다. 지구가 다른 입자를 걸러내는 차단벽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