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합니다. 이제껏 아시아 국가들은 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언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앞으로는 높아진 위상만큼 IMF의 의사 결정에 적극 관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6일 IMF 아시아·태평양국 국장으로 내정된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런 포부를 밝혔다. IMF 국장은 총재와 부총재에 이어 직급으로는 IMF 내 셋째 서열로 우리나라 정부 직급으로는 차관보에 해당한다. IMF 아태국장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금융시장에 대한 감독을 총괄하는 자리로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구제금융 결정을 맡아 총재보다 무서운 '저승사자'노릇을 했다. 채무자로 쩔쩔매던 나라에서 17년 만에 채권자의 대표 역할을 맡은 셈이니 이 내정자도 감개가 무량한 듯했다. 이 내정자는 내년 2월 10일부터 미국 워싱턴 IMF 본부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다음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이 내정자와 전화로 주고받은 일문일답.

―소감은?

"국가 위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G20 정상회담 등을 유치하면서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이 높아진 덕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이 무겁다."

―우리 정부가 물밑 지원을 했다는데?

"지난 8월 아태 국장 공모가 올라오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직접 추천서를 써줬다. 현 부총리는 9월 러시아에서 열린 G20 행사(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주요국 재무장관들에게 협조를 당부해주신 것으로 안다. 이름을 밝히긴 어렵지만 정부와 민간 금융계 인사들이 말로 하기 힘든 도움을 주셨다."(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그(이창용)가 아태 국장에 가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통보는 언제 받았나?

"어제(26일) 저녁에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직접 전화를 해서 '축하한다'면서 통보를 해줬다."

―총재가 당부한 말은?

"다른 후보보다 아시아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수 있고, 정책 집행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았고 내가 적임이었다고 하더라. 아시아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를 잘 조율해서 IMF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도와달라고 하더라. 총재는 특히 아시아 경제의 동향이 세계경제에 주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아시아 회원국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반영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크게 세 가지다. 우선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하는데(Asian Century),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인 역동성이 유지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둘째로 아시아권은 실물경제에 비해 금융시장 발전이 더딘데, 이 부분을 보완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 금융은 발전 못지않게 안정도 중요한데, 아시아는 지금 둘 다 필요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에 발생하는 일이 서방 선진국에 어떤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건지 제대로 알리고 싶다."

―다른 지역에 비해 아시아가 특별한 점이라면?

"아시아는 '헤테로지니어스(heterogeneous·다층적, 다인종)'한 지역이다. 싱가포르, 일본, 한국 같은 고소득 국가가 있는가 하면 인도, 중국처럼 경제 활력이 넘치는 개발도상국이 즐비하다. 또 국민소득이 채 500달러가 안 되는 네팔, 미얀마 등 극빈 국가도 많다. 전 세계 빈곤층 인구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있다. 이 지역에서는 하나의 정책으로는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발전 단계에 따른 맞춤형 정책으로 기여하고 싶다."

―외환 위기 당시 우리나라에 저승사자 역할을 했던 자리에 앉게 됐는데?

"내가 학자(서울대 교수)에서 현실 참여를 하게 된 계기가 1997년 외환 위기였다. 그때 '현실에 아무 도움을 못 주는 경제학이 무슨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에 직접 채권연구원을 만들어 활동도 했고, 각종 정부 자문에도 응하면서 공직에도 진출하게 됐다. 학자로서 직접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계기가 된 게 IMF 외환 위기인데, IMF에서 주요 간부로 일하게 돼 나로서도 의미가 깊다. 아시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자원한 일인 만큼 최선을 다해 우리나라의 명예를 높이고 싶다."

☞이창용은 누구

▲ 인창고, 서울대 경제학과 ▲ 美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스승)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G20 기획단장 ▲ 현재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