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본점 직원이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영업점 직원과 담합해 약 9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은행 본점 신탁기금본부 직원 A가 지난 3년여 간 영업점 직원인 B의 도움을 받아 소멸시효가 임박한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약 90억원을 횡령하다가 최근 적발됐다. 국민은행은 해당 직원을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은행 본점직원이 채권을 위조해 돈을 빼돌린 사건은 처음인데다 두 명의 직원이 90억원이라는 거액의 빼돌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은행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A는 소멸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국민주택채권의 발행번호를 알아내 해당번호로 위조 채권을 만든 뒤 영업점으로 가져가 현금화했다. 국민주택채권은 국채 중 하나로 5년 만기, 20년 만기 두 종류로 발행된다. 은행에서는 만기일 이후 5년을 ‘소멸시효’로 정해두고 이 기간이 지나도 현금화하지 않는 채권은 소멸시킨다.

A는 소멸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채권의 경우 매입자가 대부분 사망했거나 매입 사실을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채권을 매입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만기 이전에 할인율을 적용받아 현금화하거나, 만기까지 기다려 이자를 함께 받는다. 하지만 만기일이 3~4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을 현금화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 소멸시효 때까지 찾아가지 않아 폐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과거 한국주택은행이 발행한 국민주택채권 실물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A가 해당 업무를 담당하면서 소멸시효가 완성돼 폐기처분되는 채권에 관심을 갖고 범죄를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차피 없어질 채권이기 때문에 매입자가 창구에 찾아와 위조 사실이 들킬 가능성도 적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영업점에서 위조 채권임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직원 B를 끌어들였다. 통상 국민주택채권을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창구에서 실명 확인, 채권의 위·변조 여부 점검, 분실신고 등 접수 여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A가 가져온 위조 채권을 B가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현금화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접수받은 뒤 실무자가 B가 근무했던 영업점에 파견돼 위조된 채권을 확인한 결과 위조 여부를 금방 판별해냈을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었다”면서 “이번에 B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해당 영업점의 다른 직원이 위조 채권을 받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본점에 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주도한 A는 국민은행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으며 인사상 제재조치를 받은 경험이 없는 직원으로 알려졌다. 2009년 해당 부서에 발령됐으며 2010년부터 국민주택채권 관련 업무를 맡았다.

다만 A가 위조한 채권을 어떻게 창구로 가져갔는지, 횡령한 돈을 어떤 식으로 현금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B가 평소 친분이 있던 A의 부탁으로 조력을 한 것인지 협박을 받아 억지로 가담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관련자들의 예금 인출 및 부동산 등 기타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통해 현재 약 50억원을 회수했다. 국민은행은 "이번 사고로 인해 고객과 국민주택기금에 손실이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며 "감독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철저한 조사와 점검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위조한 국민주택채권은 정부가 국민주택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민주택기금의 부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무기명채권으로 발행돼 소유한 사람의 재산으로 인정된다. 수표처럼 뒤에 배서를 해야 하며 분실해도 재발행 되지 않고 양도와 매매 등이 자유롭다. 발행금액은 액면금액으로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국민주택채권은 돈 세탁 및 비자금 조성 창구로 종종 이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