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 외부 전경(왼쪽)과 사옥 사무동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아름지기'의 사옥은 경복궁의 서쪽 돌담길이 이어지는 효자로에 지난 6월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건축가 김종규의 최근작이다.

대지면적 613.5㎡,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외부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주변 건물과 비슷한 정방형 건물로 보인다. 노출콘크리트로 처리한 저층부 위로 결이 살아있는 적삼목이 중층부를 이루고, 상층부는 불투명 유리 박스가 올려진 형상이다.

그러나 이 건물을 측면에서 바라보면 적삼목으로 두른 중층부에 한옥 한 채가 지어져 있다.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1층 공간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한옥과 마당을 구성한 것.

지상 3~4층은 건물의 일부인 사무동이 올라간 것으로, 옆 건물 옥상에서 보면 중층부의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과 전시공간 및 사무동이 둘러져 있는 건물이다.

김종규는 "전통 공간이 도시 내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이라며 "상층부를 유리로 처리하고, 저층부를 콘크리트로 처리해 핵심 공간인 중층부가 건물의 주제로 부각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아름지기 사옥 1층 갤러리에서 출입문 쪽 전경.

실제 1층의 출입구에서 계단을 통해 2층 마당으로 들어가면 내부 지향적으로 꾸며진 전통공간이 딱히 어색하지 않다. 중심이 되는 한옥과 어울리도록 적삼목으로 마감된 전시공간은 한옥채의 연장선처럼 이어진다.

2층은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구조지만, 건물의 전면부 쪽은 슬라이딩 도어 방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다소 육중해 보이는 이 문을 열면 마당의 한쪽 면이 개방되는 동시에 경복궁 전경이 펼쳐진다. 다소 폐쇄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전통 공간이 문을 통해 더욱 확장되는 느낌이다.

김종규는 "각 공간은 내부와 외부, 그리고 주변 건물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며 "시각적 관계뿐 아니라 정서적 관계를 내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름지기 사옥의 한옥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설계했고, 조경은 선유도 공원 등으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정영선 조경가가 맡았다. 한국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3명의 합작품인 셈이다.

김종규의 또 다른 작품으론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카이스 갤러리'(2001년), 경기 가평군 목동리의 '성마리아 은둔소'(2009년) 등이 대표적이다. 아름지기 사옥과 같이 중(中) 규모의 작업들로 김종규 특유의 절제미가 돋보인다.

카이스 갤러리 외부 전경.

화려한 유명 의류·악세서리 매장이 모여 있는 청담동에 입지한 카이스 갤러리(현 아라리오 갤러리)는 오히려 건물 스스로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 특성을 감안해 주변의 배경이 될 수 있도록 건물 입면을 간단하게 처리했다.

대지면적 613.3㎡,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인 이 건물은 백색 노출콘크리트 박스가 유리로 마감된 1층 위에 떠 있는 형상이다. 도로에서 보면 작은 박스형 건물이지만 다른 건물을 끼고 'ㄱ'형으로 꺾인다. 이 부분은 거친 질감의 붉은 코르틴 강(cor-ten steel·내후성 강판)이 둘려 있지만, 도로에선 잘 드러나지 않아 재료의 강한 인상을 감춘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카이스 갤러리는 2001년 12회 김수근 건축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카이스 갤러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보기 좋은 디자인'을 거부하고, 일반적인 외형의 의미나 공간의 형태적인 질, 또는 공간구조의 형식의 개념을 크게 벗어난 새로운 건축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복잡한 도시 속에 자리한 카이스 갤러리와 달리 성마리아 은둔소는 해발 876m의 북배산 자락에 숨은 듯한 건물이다.

이곳은 방문객들이 일정기간 모여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수양관으로 사제관·성당·다용도실 등 5개의 크고 작은 건물 군(群)으로 이뤄져 있다.

경사지에 일렬로 줄지어 있는 성마리아 은둔소는 각 동(棟)마다 위치·크기가 조금씩 다른 창이 설치돼 서로 다른 풍경을 담는다. 다만, 중심공간인 성당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이 없다. 천창을 통해 빛이 백색 내부 공간으로 들어와 은은한 분위기를 만든다.

김종규는 "깊은 산의 경사지에 석축을 쌓아 만든 백색 박스를 하나씩 뒀다"며 "건축적 오브제(objet)라기 보다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색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배경으로서의 건축물을 지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