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투자, 구조적 요인에 따른 부진…경상흑자도 내수 충격의 '결과'
-물가 내년 2.0% "소비 투자 부진하면 금리인하 등 추가정책 필요"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달 들어 소비, 투자, 물가에 대한 3개의 보고서를 연달아 내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KDI의 보고서를 자세히 뜯어보면 한은의 물가, 기대인플레이션, 경상수지 흑자 등에 대한 입장과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한은의 금리인하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시장과 정부의 평가를 KDI가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KDI는 18일 '최근 물가상승률에 대한 평가 및 향후 전망'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7일 '민간소비 수준에 대한 평가: 소득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고서와 지난 12일 '최근 경상수지 흑자 확대의 요인 분석' 보고서를 내놨었다. 3개의 보고서를 종합해 보면 수요와 투자 부진이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며 물가상승 압력은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금리인하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소비와 투자 부진 등 내수 부진이 심각한 문제"라며 "지금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자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금리를 인상할 일만 남았다'는 등의 시각이 있는 것 같아서 금리를 올릴 때도 아니라는 것은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 KDI, 물가와 대규모 경상흑자에 대한 한은 시각 정면 비판

KDI는 이날 물가보고서에서 내년 물가상승률을 2.0%로 전망했다. 한은이 지난달 전망한 2.5%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한은의 중기물가목표인 2.5~3.5% 하단에도 못미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년 연속 중기물가목표에 미달하게 된다.

한은은 무상보육효과 소멸, 농축수산물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내년 물가상승률이 올해 1~10월 1.2%에서 내년 상반기 2.0%, 하반기 2.9%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KDI는 공공서비스 가격은 무상보육 등에 따른 일시적 물가하락 요인이 사라지더라도 내년에 통상적 상승률(1.9%)로 회귀하면 소비자물가 상승에 기여하는 게 올해 0.1%포인트에서 내년 0.3%포인트로 소폭 높아질 뿐이라고 밝혔다. 농축수산물가격도 내년에 기상이변을 제외하면 통상적인 상승률(5% 내외)을 보이면서 물가기여도가 0.4%포인트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3% 내외 수준으로 여전히 높아서 현재 물가 안정은 공급측면 요인 때문이지 수요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은 여전히 크다'는 한은의 주장에 대해 KDI는 기대인플레이션으로는 미래 물가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일반인의 기대인플레이션은 1~3분기 전에 이미 실현된 물가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물가를 후행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KDI는 공급측 요인을 제거하고 수요 측면에서만 물가상승압력을 설명하는 총수요압력에 대해 작년 하반기에 -2% 내외까지 하락한 이후 점차 상승하고 있으나 여전히 -1% 내외에 머물러 있다고 추정했다. KDI는 내년에 총수요압력이 -0.3%로 축소되겠지만 여전히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대해서도 KDI는 투자 등 내수 부진과 교역조건 개선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의 경우 경상수지 흑자 중 내수 충격의 기여분은 61% 내외로 교역조건 충격의 기여분(24%)를 압도했다고 밝혔다. 또 장기적으로 경상수지 흑자폭이 점차 축소될 것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KDI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기업의 소득 증가, 투자 부진에 따른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동의하는 반면 한은은 구조적 요인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브리핑에서 "구조적 요인이냐, 경기순화적 요인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정착됐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밝혔었다.

◆ 한은 금리인하 타이밍 늦었다는 비판? KDI "앞으로 잘 하자는 것"

금융시장에서는 KDI의 최근 보고서에 대해 한은의 금리인하 타이밍이 늦었다는 우회적인 비판이라는 시각이 많다. KDI는 국책연구소여서 정부의 시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도 한다.

올해 한은은 지난해 7월과 10월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올해 5월 한 차례 인하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상저하고(上低下高)'가 될 것이라던 경기가 전월대비 GDP 성장률 기준으로 1분기 0.8%에서 2분기 0.3%, 3분기 0.0%, 4분기 0.3%로 추락했다.

특히 작년 10월 이후에도 경기가 부진하자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도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당시 KDI를 비롯해 금융연구원, LG경제연구원 등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이 그렇게 평가했다. 결국 올해 5월에 인하한 것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은의 금리인하가 늦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한다"며 "현재 기준금리가 과거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지금 성장과 물가 상황에서는 적정금리를 다시 한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앞으로 보다 잘 관찰하고 고민해서 잘해 나가자라는 의미"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현재는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지만 만약 구조적인 요인으로 소비와 투자가 계속 부진할 경우에는 금리인하 등 추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