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

포르쉐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카이엔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포르쉐가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의 DNA를 잃어버릴 까봐 우려를 했었다. 많이 팔리는 모델을 만들어 시류에 영합하다 보면 포르쉐의 본질인 달리기 성능이 뒤로 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4도어 세단인 파나메라가 나왔을 때도 이런 걱정의 목소리는 반복됐다.

하지만 포르쉐는 보란 듯이 이 두 차종을 성공시켰다. 스포츠카 본연의 모습이 아니지만 스포츠카로 착각할만큼 잘 달리고 잘 도는 SUV와 대형 세단을 만들어냈고,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시류에 영합하기는커녕 여기서 번 돈을 재투자해 더 똑똑하게 달리는 다양한 스포츠카를 내놓고 있다.

사실 911 같은 기존 정통 스포츠카는 두 사람밖에 못 타는데다 짐을 싣기 어려워 패밀리카로는 쓸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싼 차를 몇 대쯤은 무리 없이 살 수 있는 부자들이 사서 이따금 즐기는 용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이엔과 파나메라의 등장은 보다 많은 사람이 포르쉐를 가질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포르쉐는 최근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쇼퍼드리븐(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뒷좌석에 타는 것)을 겨냥한 차다. 파나메라의 길이를 15cm 늘린 파나메라 이그제큐티브가 주인공. 그 동안 전혀 경쟁 관계가 아니었던 메르세데스 벤츠의 S클래스나 BMW의 7시리즈, 아우디의 A8을 상대할 차를 내놓은 것이다. 포르쉐의 도전은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최고급 모델인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 모델을 시승했다.

이번에 나온 파나메라는 2009년 첫 선을 보인 파나메라의 부분 변경 모델이다.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는 이전에 없던 모델이라 과거 모델과 성능을 단순히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다. 터보 모델 기준으로 비교를 해보면 우선 엔진 성능이 개선됐다. 기존과 같은 8기통 4.8L 엔진을 장착했지만 출력은 20마력 높아진 520마력이다. 연비도 L당 6.6km에서 7.3km로 개선됐다. 정지 상태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2초.(이그제큐티브모델 기준) 최고 속도는 시속 305km다.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

외관을 보면 길어졌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다. LED 헤드램프가 들어간 점이나 공기흡입구가 넓어진 점 등 여러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이전 파나메라와 매우 비슷하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공조장치 등이 있는 곳), 기어박스 주변에 있는 각종 차량 시스템 조작 버튼의 배치 등도 그대로였다. 기능적으로나 디자인 측면에서나 이전 모델의 그것이 워낙 완성도가 높은데다, 최근 대부분 포르쉐 차량들이 이 구조와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어 변화의 폭이 적었던 듯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뒷좌석. 15cm의 힘은 대단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펼쳐 들고 봐도 부족하지 않을 만한 독립된 넓은 공간 두 개가 마련됐다. 이 차량은 4인승이라 뒷좌석 가운데에는 사람이 앉을 수 없다. 앞 좌석의 등받이 부분에 있는 접이식 테이블을 펼치면 노트북을 얹어놓고 일을 할 수도 있다. 뒷좌석 중앙에는 공조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버튼 등이 따로 달렸다. 뒷좌석 시트도 몸을 감싸주는 버킷 시트 형태라는 점은 경쟁 차종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다. 동료에게 운전을 맡기고 뒷좌석 느낌을 먼저 알아봤다.

차가 출발해 도로를 달리자 기존 파나메라보다 조용하다는 느낌과 함께 포르쉐로서는 다소 이질적인 부드러운 느낌도 전해졌다. 차체가 커지면서 무게감을 더한 모습이다. 고속으로 달려도, 코너를 돌아도 특유의 단단함은 줄어든 대신 안락한 느낌이 이전보다 강조돼 있다. 최근 롤스로이스가 내 놓은 스포츠 쿠페 레이스를 시승한 적이 있는데, 레이스의 뒷좌석 느낌이랑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도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롤스로이스가 다소 거친 차를 내놓은 것이 레이스라면, 달리기의 제왕 포르쉐가 다소 편안한 차로 개발한 차가 파나메라 이그제큐티브다. 양쪽 끝에 있던 두 차가 서로를 향해 달려와 비슷해진 모습이다.

파나메라 터보 이그제큐티브

그럼 직접 운전을 하는 느낌도 이렇게 부드러울까? 해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뒷좌석에 앉았을 때의 느낌과 운전을 할 때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경쾌한 운전을 시도해보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가속력은 기존 포르쉐와 다를 게 없었다. 낮게 깔려 지면을 움켜쥐고 달리는 포르쉐 특유의 느낌은 여전했고, 특히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을 때 내뿜는 배기 음과 넉넉한 힘은 이 차 역시 달리기 DNA를 갖춘 포르쉐의 자식임을 알게 해줬다.

앞좌석에서 운전을 할 때와 뒷좌석에 앉았을 때 느낌이 다른 것은 운전을 하는 방식에 따라 차가 적절히 반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뒷좌석에 회장님을 모셨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할 때는 변속을 빨리 해치워 엔진의 분당 회전 수를 낮게 유지한다. 하지만 조금 거칠게 몰아붙여보면 변속을 늦추고 분당 회전 수를 높여놓은 채로 늘 넉넉한 힘을 준비해놓는다.

하지만 이 차는 그 동안 경험한 포르쉐보다 부족한 한 가지가 있었다. 스포츠카를 몰 때처럼 바로 코너를 빠르게 공략했을 때의 날카로움이다. 차체가 15cm나 길어지면서 크고 무거워진 만큼 커진 관성과 원심력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듯하다. 타이어에서 제법 자주 비명소리가 났다.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달려내려오는 즐거움은 다소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코너링 실력이 형편없다는 말은 아니다. 기존 포르쉐 모델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느껴진다는 것일 뿐 다른 브랜드의 차와 비교하면 여전히 포르쉐의 핸들링은 일품이다.

완벽한 운동성과 극도의 편안함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구현한 차는 아직 다른 브랜드에도 없다. 특히 초대형 세단에서 이런 실력을 갖춘다는 것은 현재 자동차 회사들이 가진 기술로는 무리로 보인다.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주로 뒷좌석에서 편안하게 이용하다 가끔은 시원하게 내달리는 운전도 즐기고 싶은 소비자라면 이 차를 사는 것도 좋겠지만, 서로 다른 두 가치를 모두 완벽하게 즐기고 싶다면 아직은 두 대의 차를 따로 사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가격은 역시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기본 모델이 2억5690만원이고 후방 카메라와 스포츠 배기 시스템 등 기본적인 옵션이 들어간 코리안 프리미엄 패키지만 더해도 2억9800만원이 된다. 세라믹 브레이크 등 조금만 사치를 더하면 3억원이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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