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와 대만 기업 4곳 등 모두 6개 해외 기업에 대해 LCD 패널값을 담합했다며 6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172억원, LG디스플레이에 201억원을 물렸다. 이들 6개사가 2001년부터 5년간 한국과 대만에서 수차례 회의를 갖고 LCD 패널의 가격을 담합해 중국 기업들에 피해를 줬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건은 중국 정부가 영토 밖에서 이뤄진 담합 행위를 처음으로 제재한 사례였는데, 한국의 간판 기업들이 타깃이었다.

삼성·LG를 시작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기업 제재 시작

중국이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해외 기업들을 상대로 담합을 비롯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제재하면서 한국 기업들에 비상벨이 울렸다. 중국은 올해 반독점법을 시행한 지 5년이 지난 것을 계기로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성장세가 둔화된 중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기업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으로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분석하고 있다.

LCD 패널 담합이 적발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과징금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명령으로 중국의 TV 제조업체들에 대한 무상서비스 보증기간을 18개월에서 36개월로 늘려야 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에는 프랑스 다농, 미국의 미드존슨 등 다국적 유제품기업 6곳이 분유값을 담합했다며 6억6873만위안(약 12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매겼다. 스웨덴의 포장용기 제조업체인 테트라팩에 대해서도 끼워팔기를 했다며 7월부터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 중이다.

올 들어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재 수위를 높이자 FT(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8월 "중국 악몽, 중국에 찍히면 끝장"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FT의 보도 직후 로이터통신도 GE·삼성전자·마이크로소프트·IBM 등 내로라하는 30여개 다국적 기업에 과징금을 깎아줄 테니 중국 내에서의 담합 행위가 있었다면 자백할 것을 중국 정부가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중국은 공정위가 3개…언제 어떤 제재를 받을지 예측 못해

중국의 경쟁 관련 법률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당국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떨고 있다.

선진국의 불공정 행위 제재 법률은 불법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중국의 가격법은 규제 범위가 넓어 제품값을 높게 책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제재가 가능하다.

과징금 액수도 우리나라는 고시(告示)에 근거해 공식대로 산출하게 되어 있지만 중국은 이런 규정이 없어 과징금 액수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과징금 부과뿐 아니라 불법 이익 몰수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작정하면 외국 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김성근 공정위 국제협력과장은 "중국에서 제재를 받은 국내 기업들은 왜 과징금이 부과됐는지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소명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의 공정위 역할을 맡는 기관이 3개로 분리돼 있어 기업들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먼저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가격과 관련한 담합 행위를 규제하고 있고,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SAIC)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와 같은 가격 외의 경쟁 제한 행위를 담당한다. 여기에 기업결합과 관련한 규제를 맡는 상무부는 국내외 기업에 대한 M&A(인수 및 합병) 승인 권한을 행사한다. 이들 '3개의 공정위' 외에도 지방의 성(省)에서도 불공정 행위 처벌 권한을 갖고 있어 외국 기업을 압박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중국 측이 우리나라 기업에 횡포를 부려도 공정위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3개 공정위'와 상호 협력을 강화하자는 양해각서(MOU)를 맺었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제재 수위를 낮춰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공정위의 고민이다. 외교 마찰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공정위는 다음 주 시작하는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2단계 협상에서, 상대국에서 제재를 받는 기업에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문구를 넣자고 중국 측에 요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