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중 완공해서 상업생산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다간 합작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어 걱정입니다.”

SK이노베이션(096770)관계자는 15일 “여야 간 대립으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져 내년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 2011년 8월 JX에너지와 50대 50 합작으로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생산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총 투자비 9600억원 가운데 JX에너지는 현재 투자 금액의 절반 가량을 납입한 상태로, PX공장은 70%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가 외국 기업과 합작으로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의무 지분율을 50%까지 낮추는 내용의 외촉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내용이어서 특별법인 외촉법이 아닌 기본법이라 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증손회사)를 세울 때에는 지분 100%를 갖도록 규정돼 있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경제5단체장 정책 간담회'에서 박용만(왼쪽 두번째) 대한상의 회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이 이날 사상 처음으로 여야 원내대표들을 직접 만나 ‘경제회복·민생안정을 위한 경제계 의견 건의서’를 전달한 것은 ‘외촉법 개정안’ 등 주요 입법 현안 처리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재계에서 “정치권 상황 탓에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법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용만 회장도 “여야 입장이 달라 국회 차원의 최적 해법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경제가 어려워 국민과 기업인들이 관련 대책의 조속한 처리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달라”고 호소했다.

재계가 이날 정치권의 조속처리를 당부한 주요 법안을 보면 부동산 활성화, 기업 투자 활성화, 중소기업 지원 등에 초점을 맞췄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주요 법안들은 여야 대표나 정책위 의장이 이미 내용을 충분히 아는 것들”이라며 “정·재계 간 소통과 대화의 자리를 자주 갖고 경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 양당 정책위 의장과 경제단체 부회장 간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재계가 이날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이 중요하다는 원칙에는 공감했지만 앞으로 대화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경제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재벌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경제적 약자 보호 등 재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데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전병헌 원내대표가 “재계가 최저임금, 통상임금에 대해 인식을 바꾸고 ‘최장 시간 노동 국가’라는 부끄러운 타이틀도 내려놔야만 경제단체의 입법 요구가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재계가 경제활성화와 투자 촉진을 명분으로 ‘제 잇속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행 법률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외국 기업과의 합작 사업을 먼저 추진한 뒤 법 개정을 요구하는 게 일의 순서가 올바른지 의문이다”며 “합작 투자가 빌미가 돼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 같은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소속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외촉법 개정안은 ‘기업 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지주회사 행위 제한’의 공정거래법 취지와 법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공정거래법 철학과 원칙을 훼손해 절름발이로 만드는 우회적, 탈법적인 것이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