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준이 누구야?"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 명단에 국내 건축계가 잘 모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국 건축계의 신인상이자 등용문인 이 상을 받은 건축가는 대개 국내에서도 이미 이름이 알려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의 수상은 더욱 이목을 끌었다.

재(在) 스위스 건축가인 이동준(스토커 리 아키테티·stocker lee architetti)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중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건축가 조성룡을 비롯해 5명의 심사위원은 그에 대해 "국가·지역의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의 접목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건축가"라며 "젊은 건축가상의 울타리를 공간적으로 확장하고 다양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좌)스토커 멜라니,(우)이동준.

6일 강연차 한국을 찾은 이동준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에도 서울에 왔지만, 구석구석 바뀌지 않은 곳이 없어 헷갈리기 일쑤”라며 “스위스 등 유럽과 달리 건물·도시의 사이클(cycle)이 대단히 빠르고 개별 건물의 개성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준은 스위스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란 사실을 빼더라도 이력이 여느 건축가와 다르다. 그는 르코르뷔지에, 피터 줌터, 마리오 보타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을 배출한 스위스에서 건축을 배웠지만, 1993년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 당시만 해도 전교 꼴찌에 가까웠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국내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교시험은 소위 ‘자를 대고 긋듯’ 한 번호로 찍었다. 교육 시스템에 대해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으로 대응한 것. 철이 없었지만, 대신 일본어와 컴퓨터를 배웠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유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처음엔 일본으로, 이후 준비 없이 이탈리아로 떠났다. 당시 25살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하던 이동준은 지인을 통해 스위스의 유명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자국에 새로운 학교를 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그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이동준은 체계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기 위해 학부로 입학했다.

‘아카데미아 디 아키테튀라(Accademia di architettura)’에서 이동준은 역사·철학·예술 등을 기반으로 한 건축 교육을 받았고, 1회 졸업생이자 교수로 초빙돼 스위스에 터를 잡았다. 스토커 리 아키테티는 학과 동기이자 아내인 스토커 멜라니(Stocker Melanie)와 함께 열었다.

그는 다수의 현상공모에서 당선과 낙선을 반복하며 경험을 쌓았다. 수년간 입선조차 하지 못해 사무실 경영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쉬(Ishi·2006·설계년도), 파지(Faggi·2006), 바우 바우(bau bau·2009) 등의 주택 등이 호평을 받으면서 현재 스위스 내에서도 입지를 다졌다.

“바우 바우의 경우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대지에 들어선 건물로 스위스의 전형적인 주택과는 많이 달라 준공 당시 많은 이들이 구경을 올 정도였다. 다만 건물의 형태나 입면은 내부의 공간 구성 및 법적 제약 등의 결과물이지, 개인적인 개성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개성이라고 한다면 거추장스러운 것, 없어도 될 것이 무엇인지 연구해서 들어내는 것이 오히려 스토커 리 아키테티의 개성이다.”

고교 졸업 이후 약 20년 가까이 해외 생활을 한 이동준은 최근 건축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 활동이 많아지며 자주 한국을 오가는 편이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보며 한 편으론 반갑지만, 한 편으론 일종의 유행처럼 지나갈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집과 도시와 관련한 장관이 모두 토목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위스의 경우 건축가가 정치·행정 분야에 매우 밀접하게 개입돼 있으며, 모든 개발사업 등은 건축가가 주관한다. 건축가가 집과 도시에 대해 질문할 수 없고, 사안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없으면 소수를 위한 개별 작업에 치중할 것이다. 그건 분명히 문제다.”

이어 그는 “의사의 실수는 땅 밑에 남고 건축가의 실수는 땅 위에 남는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