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우리를 뭐라 해도 그냥 조용히 지내려고 했습니다." 지난 10월 28일 박창욱(54)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국장의 목소리는 격정을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대우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친목단체에서 출발(2009년 10월)해 2010년 8월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단체다. 회원은 4000여명.
그는 대우 출신이다. 경남 사천시 태생인 그는 1985년 ㈜대우 무역부문에 입사, 13년간 인사업무를 했고 2년간 경영기획부장을 지내다 2000년 2월 퇴직했다. 퇴직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분주하던 그는 최근 세상에 대우맨들을 위한 하소연을 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이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추징금이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더군요. 이제는 예전처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옛 직장동료들과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를 포함한 대우맨들이 움직인 배경이 무엇일까. 그는 "도덕적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대우 추징금은 전두환 추징금 등 일반적 추징금과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추징금 하면 개인적 횡령이나 착복에 대한 환수의 의미로 생각하는데 김우중 회장 및 대우 임직원들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이른바 '징벌적 추징금'입니다. 외국환관리법 등에 따른 신고나 보고 절차를 적절하게 이행하지 않은 위법사항에 기인한 것으로 절차를 위반한 회사의 차입금 누계 전체를 대상으로 추징금을 부과한 것입니다. 누계이기 때문에 실제 해당 금액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걸 입증할 물증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우에 대한 워크아웃 당시 실사를 한 회계법인(삼일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개인적 횡령이나 착복한 것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재판과정에서 징벌적 추징금을 선고한 것은 회수 가능성보다 형식적 법리에 따른 징벌적 목적 외에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대우 임직원들에게 선고된 추징금 액수를 보니 징벌적이라는 의미가 실감났다. 김우중씨는 당시 창업자이자 그룹회장이니 논외로 하더라도 임직원 개개인에게 부과된 추징금은 천문학적이다. 사장부터 이사까지 전직 대우 임원 7명에 대한 추징금을 보면 가장 적은 사람이 1조4725억원이고 가장 많은 사람은 23조359억원이다. 7명의 총액은 75조9207억원이다. 개인이 도저히 낼 수 없는 금액이다. 이들 7명 외에 계열사 임직원 31명도 민·형사 소송을 통해 배상판결 및 재산압류를 당했고 그중 4명은 이미 고인이 됐다.
박창욱 사무국장은 2005년 4월의 대법원 판결을 보여줬다. '도피 재산이 위 피고인들(전직 대우 임원 7명)이 아닌 회사의 소유이거나, 위 피고인들이 이를 점유하고 그로 인해서 이득을 취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추징을 하도록 되어 있어 추징한다.'
◇ "학교 다녀온 초등생 딸이 울면서 물어보는데… 가슴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해당 임직원들은 출국금지 처분을 당했는데 이들은 이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2006년 7월의 행정법원 판결과 2007년 3월의 고등법원 판결 및 2007년 6월의 대법원 판결문은 '예금보험공사가 9개월에 걸쳐 대우그룹 임직원들에 대한 개인비리 등을 조사하였으나 개인비리가 밝혀진 것은 없었다'고 적시했다. 판결문은 또 '이들이 개인 재산을 축적하였다고 볼 자료는 없는 점 등으로 출국금지 처분을 취소한다'고 했다.
박창욱 사무국장은 "10만에 달했던 대우맨들은 그룹이 해체된 후 뿔뿔이 흩어져 어렵게 생활했다"며 "생활고 못지않게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눈길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우사태가 한창이던 1999년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IMF 외환위기가 온 것은 김우중 회장과 대우 때문이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 말이 사실이냐고 울면서 묻더군요. 가슴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밤늦게까지 회사일을 하고 택시 타고 집에 가다가 대우 이야기가 나오면 운전사한테서 "얘네들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운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대우를 그만둔 후 지인이 운영하는 의류회사에 취직해서 상무로 일했다. 5년간 일하다 2005년 8월에 전무로 퇴직했는데 다행히 회사가 잘돼서 5년 사이에 매출이 4.3배로 늘었다. 대우 시절부터 내로라하는 인사 전문가였던 그는 대학 두 곳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취업 전문가로 변신했다. 요즘 그는 대학 100여곳과 기업 100여곳에서 강의를 하는 스타강사가 됐고 5년 전부터는 강의만으로도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노동강도는 간단찮다. 1인기업 격인 그는 생계를 위해 1주일에 1000㎞를 달리고 30시간 강의를 한다.
그는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대우맨 중에는 정말 처지가 딱한 분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의 한 전직 임원 A(61)씨는 2002년 이후 매년 한 번꼴로 총 열 번 관상동맥경화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2011년에는 개복수술을 해서 뛰는 심장에 핏줄을 붙이는 시술을 받았다"고 알려줬다. 의사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A씨는 1977년 대우에 입사해 국제금융 분야를 맡았고 대우사태로 2001년 구속돼 1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200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A씨는 직장생활로 모은 돈으로 산 반포 아파트를 변호사 비용 등으로 2001년에 처분했다. 이후 10여년을 처가와 직장인이 된 딸아이 도움으로 전세를 전전했고, 지금은 결혼해서 외국에 사는 딸아이(홍콩에서 외국계 은행 근무)의 명의로 된 아파트에서 두 부부가 살고 있다. A씨는 대우 퇴직 후 프라임그룹, 동부그룹에서 잠시 근무한 적이 있으나 그만두고 현재는 서울 지역 몇몇 대학의 시간강사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박창욱 사무국장은 자신이 대우맨이라는 데 대한 자부심이 강해 보였다. "대우는 세계경영의 선구자였습니다. 요즘 창조경제와 맥락이 통하는 대목이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이 대우정신을 상징했습니다." 대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대단한 일벌레 집단이면서 재벌 중에서는 특이하게 리버럴한 사풍(社風)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대우맨들은 대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대우그룹의 사훈은 △창조 △도전 △희생이었습니다. 희생을 사훈으로 택한 곳은 아마 대우밖에 없을 겁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세대가 희생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없어진 그룹 출신 중 전직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친목단체를 만들어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 대우 외에 또 있을까요?"
그는 "필생의 목표가 '대우맨의 명예회복'"이라고 했다. "대우가 가치 있는 집단이었다는 것은 그룹이 해체된 후에도 각 계열사들이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자력으로 정상화됐고 대우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이 전액 회수되고도 8000억원이 남았다고 추정되는 데서도 입증이 됩니다." 그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수많은 대우맨들의 열정과 기여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