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을 바꾸듯이 양성자 가속기에서 양성자 대신 질소 이온을 발사할 수 있다. 투명했던 다이아몬드가 질소 이온을 맞아 블랙 다이아몬드로 변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주 양성자가속기센터의 가속기는 길이 3m 지름 0.5m 원통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이었다. 이 원통에서는 지네 다리처럼 기다란 연결관이 상하좌우로 뻗어나와 있었다. 조용섭 양성자가속기센터장은 "지네 다리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연결관으로 양성자(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입자)를 빛의 절반 속도로 달리게 한다"며 "빨라진 양성자는 물질 내부에 파고들어 원자를 쪼개거나 원자 간 결합을 끊어 신물질을 만든다"고 말했다.

양성자 가속기에서는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검은색 다이아몬드로 바뀌고, 금속광택이 나는 플라스틱이 만들어진다. 말 그대로 '21세기 미다스의 손'이다.

양성자가 빛의 절반 속도로 달려

양성자 가속기의 힘은 엄청난 속도에서 나온다. 75m짜리 선형가속기는 평범한 양성자를 빛 속도의 43%에 해당하는 초속 13만㎞로 달리게 한다. 일상에서는 체감할 수 없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속도이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이 가면 길이가 줄어들고 질량이 늘어난다. 양성자 가속기에서는 양성자의 질량이 본래보다 10% 정도 는다.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힘은 1억eV(전자볼트) 에너지이다. 양성자 가속기 내 고주파발생장치에 서 만들어진 1억eV급 전기장은 양성자를 잡아당겨 빛의 절반 속도로 달리게 한다. 1억eV는 1.5V(볼트)짜리 건전지 6700만개를 연결해야 얻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다. 경주 양성자 가속기는 1초에 양성자 12경(京·1경은 1조의 1만배)개를 빛 속도의 절반으로 달리게 한다. 75m 달려 도착하는 목표 지점의 오차는 50㎛(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에 불과하다. 양궁으로 치면 75m 떨어진 거리에서 50㎛ 크기 과녁에 화살을 쏴 명중하는 셈이다.

경주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의 양성자 가속기. 길이 75m의 선형가속기를 출발한 양성자는 빛 속도의 43%에 달하는 초속 13만㎞로 달려 가속기의 끝(붉은색 장치 앞)에 도착한다.

엄청난 속도의 양성자를 금속이나 플라스틱에 쏘면 내부의 원자를 튕겨 내보내거나, 원자 속의 중성자를 차버리고 대신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물질 구성 성분이 바뀌면서,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 원자력연구원 김귀영 박사는 "현재 경주 양성자 가속기에 견줄 만한 양성자 가속기는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SNS,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의 J-PARC뿐"이라고 말했다.

금속 장점 가진 플라스틱 만들어

양성자 가속기는 물질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만큼, 신소재 산업과 보석 산업, 육종 개량 등에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조용섭 센터장은 "경주 양성자 가속기는 취약한 국내 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속도의 양성자를 다이아몬드에 충돌시키면 규칙적인 탄소 원자의 배열이 흐트러진다. 그에 따라 녹색, 주황색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양성자 가속기에 양성자 대신 크기가 더 큰 질소 이온을 투입해 발사할 수도 있다. 총으로 치면 더 큰 총알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면 탄소 결합의 흐트러짐이 극대화돼 검은색 다이아몬드가 생성된다. 가속기센터는 이런 방법으로 투명한 사파이어에 청색, 주황색 등을 입히는 데도 성공했다. 사파이어는 색이 있으면 가치가 높아진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이재상 박사는 "세계 유색 보석 시장이 연간 10조원에 달한다"면서 "이 기술 개발로 세계 보석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내장재를 생산하는 국내 한 중소기업은 이달 초 경주 양성자 가속기의 도움으로 금속광택이 나는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불규칙하게 배열된 플라스틱의 탄소 결합에 규칙성을 가미해 금속과 같은 성질을 띠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편리한 사출 공정을 통해 플라스틱 제품을 제조하면서 고급스러운 금속 느낌까지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