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을 무서운 속도로 사들이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국적이 따로 있다. 국적에 따라 자금 성격도 조금씩 다르다.
증권업계에서는 미국계 자금의 경우 연기금이 많아 중장기적인 주가 상승과 연말 배당을 노리는 장기투자 성격이 강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룩셈부르크 등 유럽계는 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일종의 사모펀드인 헤지펀드 중심의 단기투자 자금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 유입되는 외국인 자금은 장기투자 성격의 미국계 자금이 대부분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당분간 외국인 순매수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로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계 자금의 상당부분이 미국계라는 점을 들고 있다.
◆ 미국, 최대 순매수국 부상
한국인 투자자들이 예컨대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돈을 넣었을 경우 이 펀드는 직접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사게 된다. 미국인 투자자들은 이 펀드의 자금을 외국인으로 '한국계 혹은 아시아계' 자금으로 분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 순매수가 시작된 지난 8월 23일 이후 미국계 자금은 약 4조8000억원이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왔다. 전체 유입액 13조7306억원의 35%를 차지했다. 이어 영국계 자금이 약 1조7000억원, 케이먼군도가 8000억원, 싱가포르가 5000억원, 룩셈부르크가 4000억원, 프랑스가 200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한국 주식시장의 최대 순매수국으로 부상했고 외국인 자금 성격도 다양해졌다. 7월 초반에는 주로 미국계 자금이 한국 주식의 순매수를 주도했지만 8월 이후 미국계 자금은 물론 유럽계와 아시아계 자금, 조세회피지역인 헤지펀드자금까지 가세해 다양한 출처의 돈이 한국 주식 사재기에 나선 상태다.
오승훈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펀드 내에서 작아진 한국 비중을 예전 수준까지 되돌린다고 가정하면 외국인 매수 규모가 22조원 정도에 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산 것을 보면 아직 절반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 15년전 외국인과는 다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2년부터다. 물론 초창기에는 일반법인의 경우 전체 주식의 10%까지만 주식소유가 허용되는 등 이런저런 제한이 많았다. 갑작스런 개방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이후 1997년까지 8차례에 걸쳐 조금씩 외국인 투자한도가 확대되기 시작했고,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월부터는 공공법인을 제외한 전 일반법인에 대해 투자한도 제한이 완전히 철폐됐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을 구성하는 또다른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1998년 12월의 국가별 매매현황을 보면 미국의 거래비중이 26.8%로 가장 높았고 영국이 21.1%로 뒤를 이었다. 이어 말레이지아(15.1%), 아일랜드(7.7%), 룩셈부르크(4.8%) 등이 뒤를 이었다.
외국인이 역대 최장 순매수 기록을 경신하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지난 1998년 '바이 코리아'(한국주식 매수) 후 외국인들은 갑자기 매도로 돌아서면서 대규모 자금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자금의 성격은 15년 전과 다르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 아시아 각국의 환율이 급등하자 환차익을 노린 단기성 투자 자금인 '핫머니'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 때문에 당시 코스피지수는 단순에 50% 가량 급등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고 환율도 안정세를 보이자 외국인들이 곧바로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주가는 다시 반토막이 났다.
최근 외국인 순매수를 주도하는 세력이 장기 투자 성격의 미국계 자금이 많다는 점에서 15년전 단기 차익을 노린 외국인과 지금의 외국인은 성격이 다르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미국계 '길게'…유럽계 '짧게'
외국계 자금도 국가별 투자 성향이 다르다.
미국계 자금은 지난 2011년 6월부터 한국 주식시장에서 비중을 줄이기 시작한 이후 올해 6월까지 2년간 순매도를 이어갔다. 미국계 자금이 장기자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경기 회복을 겨냥한 자산배분전략 변경에 따른 한국 주식 비중 확대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매수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7월 이후 들어온 외국인 자금 중에서 미국인 자금의 비중이 높다"며 "미국 자금은 단기 차익을 노리기보다 장기 투자를 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유럽계 자금은 주로 헤지펀드로 단기 차익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유럽계 자금은 과도하게 줄여놨던 한국 시장에 대한 비중을 지난 9월 급하게 늘린 바 있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유럽계 자금은 주가 차익과 환 차익을 함께 얻은 만큼 단기 차익실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