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방자치단체는 중독 물질·행위(알코올, 인터넷 게임, 도박, 마약 등)에 대한 광고 및 판촉을 제한하는 데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한다."(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터넷 게임 관련 사업자에게 연매출 1% 이하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도록 한다."(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

올 들어 국회에 상정된 게임 규제 관련 법률안의 내용들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이달 초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마약·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규정했다. 정치권에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게임업계의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게임쇼'지스타(G-Star)'를 찾은 관람객들이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 앞에 줄을 서 있다. 게임은 콘텐츠 수출의 60%를 차지하는'효자 산업'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에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구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에 항의하는 내용의 성명서 발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계에서는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산업 자체를 '악(惡)'으로 몰아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 게임회사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한국 게임 산업은 여전히 규제라는 사회적인 논란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中·日 등 치고 나오는데 한국은 제자리"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지난달 시가총액 1000억달러(108조원)를 돌파했다. 코스피 2위인 현대자동차 시가총액(57조8225억원)의 2배에 달한다. 모바일 게임·메신저가 주요 사업인 텐센트는 카카오의 2대 주주다. 국내 중소 게임사에도 투자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도 올 들어 '겅호온라인' '슈퍼셀' 등 모바일 게임사를 인수하며 강자로 떠올랐다. 소프트뱅크는 두 회사를 인수하는 데 1조8885억원을 투자했다.

반면 한국 인터넷 게임은 정체돼 있다. PC방 통계 사이트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2008년 전국 PC방 점유율 상위 10개 게임 중 외국산 게임의 점유율 합계는 18.58%였다. 그러나 지난 17일 현재 외국 게임 점유율은 55.27%로 5년 전의 3배로 뛰어올랐다. 미국 회사가 개발하고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42.12%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다.

모바일게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침체된 온라인 게임의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업계에서는 "모바일이 정말 수익성이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구글·애플의 앱스토어, 카카오 등 플랫폼에 수수료를 떼어 주고 나면 게임 개발사가 가져가는 수익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 이재성 전무는 "한국이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을 선도한 것과 달리 모바일은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다"라며 "외국 모바일 게임사가 먼저 장악해버린 세계 시장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콘솔게임 위주였던 미국·일본 등이 온라인 게임 진출에 늦은 틈을 한국 업체들이 파고들었습니다. 반면 스마트폰·모바일 바람은 외국에서 먼저 시작된 것입니다. 핀란드의 '앵그리 버드' 같은 세계적 히트작을 넘어설 한국 게임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요. 한국 게임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지스타 보이콧" 움직임도

침체 상황은 다음 달 14일 개막하는 국내 최대의 게임쇼 '지스타(G-Star)'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전망이다. 일반 이용자 대상(B2C) 전시의 경우, 참가 국내 기업은 지난해 113개에서 올해 120개로 늘었지만, 부스의 수(전시 면적)는 1183개에서 989개로 줄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부스를 크게 차리는 대형 업체들의 참가가 줄었다는 뜻"이라며 "규제가 매출 감소로 직결되는 대형 업체들이 보이콧 차원에서 불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회사명 머리글자를 따서 '5N'이라고 불리는 5대 게임사(넥슨·엔씨소프트·NHN엔터테인먼트·CJ넷마블·네오위즈게임즈) 중에서 올해 지스타 B2C 전시에 참가하는 회사는 넥슨 하나뿐이다. 지난해에는 넥슨·NHN엔터테인먼트·넷마블 등 3개 업체가 참여했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남궁훈 전 대표는 올해 초 "게임 규제에 대한 항의의 뜻에서 지스타에 불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 상정에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이 참가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서 의원의 지역구(부산 기장갑)가 속한 해운대는 지스타 행사장인 벡스코가 있는 곳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임업계는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게임의 부정적 효과가 부각되고 규제가 자꾸 강화되면서 개발자들이 게임업계에서 발을 돌린다는 것이다. 넥슨 안인숙 이사는 "신입은 물론이고, 게임 개발을 주도할 경력 개발자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게임 업체들도 중독을 비롯한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각 회사가 아니라 업계 전체 차원에서 해결책 마련에 힘을 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산업 자체를 위축시켜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청소년 12만명과 19~35세 성인 3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게임 과(過)몰입 종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과몰입군'과 '과몰입 위험군'을 합친 '문제적 게임 이용자'는 전체의 2%였다. 2011년 조사 때의 6.5%보다 4.5%포인트 줄었다. 진흥원은 "문제적 게임 이용자가 줄어든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정부의 다양한 게임 정책이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K-IDEA 회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게임의 부작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약·도박 등과 동일 선상에서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자율 규제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게임 업체들과 계속해서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