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 코네티컷주의 초등학교에서는 한 남자가 무차별 총격을 가해 어린이 20명을 포함한 28명이 사망했다. 이 남성은 평소 GTA, 콜오브듀티 등 폭력성이 짙은 게임을 즐겼다고 진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악의 총기사고’라며 폭력적인 게임을 개발하는 업계 관계자들과 면담해 개선을 당부했다.

GTA5 게임 속 한장면. 주인공이 총을 겨누자, 시민들이 놀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초등학교 총기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올해 초 미국 뉴멕시코주에서는 또 한 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15세 소년인 느헤미야 그리에고는 자신의 부모와 동생 3명 등 일가족 5명을 총으로 쏴서 살해했다. 미국 뉴멕시코주 경찰은 범행동기에 대해 소년이 평소 GTA게임의 마니아로서, 폭력적인 게임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사회를 혼란에 빠트린 문제 게임의 새 버전인 ‘GTA5(Grand Theft Auto)’가 지난달 한국에 상륙하면서 청소년을 둔 학부모와 교육계가 긴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GTA5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모방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발생한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 마음에 안들면 총 쏴죽여…욕설·강간·매춘·마약 등장에 학부모 ‘경악’

GTA5는 광활한 도시를 돌아다니며 온갖 나쁜 행동을 일삼는 엽기 게임이다. 지나가는 일반 사람들에게 총을 마구 쏘아대는 등 폭력성 때문에 ‘악마의 게임’으로도 불린다.

GTA5 게임의 전개는 범죄를 소재로 이어진다. 게임의 미션 가운데는 납치돼 강간 당하는 여자친구를 구하는 일도 있다. 두 명의 남성이 하의를 벗은 상태에서 여자를 겁탈하려는 장면이 여과없이 등장하며, 주인공은 총으로 범인을 쏴죽여야 미션을 성공한다. 스트립바 같은 곳에서는 여성에게 추태를 부릴 수 있으며, 몸을 만질 수도 있다. 심지어 여성을 살인해 기존에 줬던 돈을 다시 빼앗는 엽기적인 상황도 가능하다.

GTA5 게임 속 한장면. 한 여성이 속옷을 벗은 채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주인공의 결정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연출된다.

또 길거리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총을 쏘거나, 시내 한복판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얻어지는 권총, 샷건, 칼 등을 이용해 지나가는 일반 사람을 아무런 이유없이 살해하는 것이다. 심지어 출동한 경찰관과 119요원까지 죽일 수 있다. 또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모든 차를 훔쳐탈 수 있다. 차를 빼앗은 피해자조차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해할 수 있다.

게임 내 성적표현도 직설적이다. GTA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한글 자막 역시, 게임의 묘사를 살리기 위해 온갖 욕설을 비롯 성적표현들이 여과없이 나타난다. ‘XX, 짭새(경찰을 뜻하는 은어)다’는 식이다.

GTA5를 본 한 학부모는 크게 분노하며 “이건 게임이 아니라 아이들 눈과 귀, 정신을 망쳐버릴 수 있는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게임 회사는 표현의 자유를 말하겠지만, 개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GTA5에 대해 관계기관은 등급불가(판매·유통불가)를 판정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송형석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은 “아무리 가상의 게임이지만 개인이 판단하고 행위하기 때문에 영화처럼 관찰자가 아닌, 개인 체험에 가깝다"며 “더구나 GTA5는 현실에 가까운 그래픽으로 몰입력이 크다”고 말했다. 송 원장은 “현실과 비슷한 상황에서 폭력이나 살인 등 범죄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죄책감이나 도덕의식이 없어지고 실제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특히 GTA5는 악당이나 좀비가 아닌, 선량한 일반 사람을 살해하도록 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게임위, 심의 ‘객관성’ 논란…GTA5 등급거부 수준

GTA5 게임 속 한장면. GTA5는 모든 차를 훔쳐탈 수 있다. 사진은 자동차를 몰고 지나가는 시민을 치고 달아나는 모습.

그러나 게임물등급위원회는 GTA5에 대해 최고 등급인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내렸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에 출시되는 모든 게임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판매·유통될 수 있다. 올해 8월 GTA5의 국내 유통사인 테이크투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심의를 신청했다. 접수된 게임은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전문위원들이 검토한다. 이후 등급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최종 등급을 분류한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등급 심의를 거부하면 게임은 출시될 수 없다.

게임물등급위원회 관계자는 “GTA5 게임 내에 선정적 표현과 과도한 폭력, 범죄, 약물 등이 포함돼 청소년 이용불가 판단을 내렸다”며 “등급 거부는 숨겨진 악성코드가 발견되거나 개발사의 보고와 다른 장면이 나왔을 경우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GTA5 게임 속 한장면. 주인공이 훔친 차를 이용해 경찰차를 들이박는 모습. 차에 치인 경찰은 충격으로 쓰러져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게임등급위원회의 심의에 객관성 논란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디아블로3’는 등급보류와 재검토 등 약 43일(법적 심의시간 15일 이내)의 우여곡절 끝에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반면 GTA5에 대한 심의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렇다면 같은 19세 이상 등급을 받은 디아블로3와 GTA5는 비슷한 수위의 게임일까.

두 게임의 객관적인 데이터만 놓고 봐도 GTA5가 훨씬 더 자극 수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의 후 문제가 되는 사안은 게임타이틀 표지 경고문구를 넣게 돼있다. 디아블로3는 폭력성 한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됐다. 하지만 GTA5는 선정성, 폭력성, 언어의 부적절성, 약물, 범죄, 사행성 등 모두 6가지 경고메시지를 표시하고 있다. 더구나 심의통과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디아블로3에 비해, GTA5는 단 한번에 심의를 통과했다.

GTA5 게임 속 장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두 남자가 여성을 겁탈하는 것을 막는 미션의 모습, 두 여성이 노출한 채 춤을 추는 장면, 911요원을 폭행하는 장면, 총을 맞은 경찰이 쓰러진 장면

과거 게임등급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교육, 게임 등 각 업계의 추천을 받아 심의위원이 선발되지만, 이 가운데 게임에 대한 지식과 GTA게임이 사회적으로 왜 문제가 되는지 배경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결국 아무런 사전 지식없는 비전문가들이 1~2시간 짧은 회의와 보고서를 보고 게임을 심의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게임 심의위원에게 GTA5 게임을 1시간이라도 직접 해봤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 GTA5 버젓이 판매, 말뿐인 ‘청소년이용불가’…애초 등급거부권 행사했어야

현재 GTA5와 관련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에도 게임판매점, 온라인마켓, 중고거래 등을 통해 버젓이 청소년들에게 게임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심의만 우리의 영역일 뿐, 유통은 경찰의 관할이라며 나몰라 하는 상황이다.

18일 GTA5를 판매하는 한 게임판매점을 방문했을때,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게임을 쉽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근의 다른 매장에서는 미성년자 여부를 질문했지만, 별다른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다. 직접 매장에 찾아오는 오프라인 매장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으로 거래되는 온라인마켓과 과 중고거래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게임업체가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의 경우 청소년들이 쉽게 게임을 구입할 수 있다.

옥션, 지마켓, 11번가 등 대형 온라인 마켓에서는 로그인을 통해 19세 이상을 판단하고 있지만, 부모의 주민번호나 아이디를 도용해 간단히 구입할 수 있다. 게임판매점이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의 경우 로그인도 필요없이 더욱 간단하게 구입할 수 있다.

중고장터는 특성상 개인과 개인 간에 거래되고,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우편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부모의 눈길은 물론 법과 단속의 사각지대가 돼버렸다.

김현수 명지병원 인터넷중독치료센터 교수는 “사람을 살해하는 등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을 하고 모방범죄를 저질렀다는 진술이 청소년 범죄자 등에서 종종 나오고 있다”며 “이미 GTA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수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를 지적 받은 게임이기 때문에 등급 심사를 할 때 좀 더 엄격하게 검토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