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전남 영암 포뮬러원(F1) 코리아인터내셔널 서킷. 구름이 걷히고 전광판의 대형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키자, F1 코리아그랑프리 결승전을 관람하러 몰려든 8만여 관중의 눈과 귀가 활짝 열렸다. 오전에 내린 비로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서킷 위에 22대의 '머신(경주용 자동차)'이 잔뜩 웅크린 채 출발 깃발이 올라가길 기다렸다. '크아아아앙~' 귀를 때리고 엉덩이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일제히 시동이 걸리고, 한 바퀴의 예열을 거친 뒤 다시 출발선.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팀의 인기 선수 제바스티안 페텔이 영암에서도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을지, 페라리 팀의 페르난도 알론소와 메르세데스 팀의 루이스 해밀턴이 페텔을 누르고 행운을 거머쥘 수 있을지 모두가 숨죽이고 서킷을 내려다봤다.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팀이 피트에서 경기 직전 F1 머신을 점검하는 모습.

이때, 관중석 반대편 2층짜리 로열박스 안에서는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킷을 내려다보는 무리가 있었다. 건너편 일반석의 관중이 땅과 하늘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면, 이들은 에어컨 바람이 솔솔 나오는 실내에서 곳곳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경기 해설을 보고 들으며, 푹신한 소파와 라운드 테이블에서 애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제공받는 호텔급 서비스를 즐겼다. F1 운영사인 FOM(포뮬러원매니지먼트)가 특별 관리하는 '패독 클럽(Paddock Club)' 속 풍경이다.

입장료 최고 800만원, F1 흥행 척도

패독은 원래 말을 관리하는 작은 우리, 또는 풀어놓고 기르는 목초지를 뜻한다. F1 팀이 머신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차고가 줄지어 선 곳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해서 이렇게 불리게 됐다. 타이어를 갈고 주유하는 '피트'와 바로 붙어 있다. 1층 피트와 패독 위로, 레이싱팀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즐길 수 있는 '패독 클럽'이 자리한다. 매년 전 세계 19개국을 돌며 치러지는 F1 경기장마다 패독클럽은 빠짐없이 운영된다.

가격은 경기장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세금을 포함한 평균 가격은 600만원 선. 11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F1 경기의 패독클럽 입장권은 세전 가격이 7337달러(780만원)에 달한다. 결승전을 포함해 사흘간 이 시설을 이용하는 대가 치고 상당히 비싼 가격이지만, F1 마니아를 자처하며 입장권을 선뜻 사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호텔 라운지를 옮겨놓은 듯한 포뮬러원(F1) 패독클럽 내부 모습. 수백만원의 티켓을 구매한 극소수의 모터 스포츠 마니아들은 이 공간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아래층엔 F1 머신과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는 공간이 있다.

올해 영암에 마련된 패독클럽에선 개인 고객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이 F1 경기 후원사인 LG전자와 피렐리, 페르노리카 등이 초청한 주요 고객 또는 협력사 관계자들이었다. F1 경기팀을 운영하는 자동차 회사는 직접 패독클럽 입장권을 사서 주요 고객을 초청하기도 했다. 추첨을 통해 고성능차 AMG 고객 14쌍을 초청한 벤츠코리아 측은 "핵심 고객에게 희소가치가 있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우리 브랜드에 대해 더 강렬한 애착을 갖도록 하는 효과를 노린다"고 말했다. F1경주와는 별도로 벌어지는 새로운 비즈니스 세계인 셈이다.

레이싱팀의 긴박한 회의 장면 엿볼 수도

외국에서 열리는 F1 경기에선 이곳이 부호들의 사교장이 되기도 한다. 올해 영암 패독클럽에는 자동차 마니아로 유명한 스웨덴 왕자 칼 필립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패독클럽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최고는 앉아서 스타급 선수들의 '방문'을 받는 것이다. 올해 영암 결승전이 펼쳐지던 날엔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팀의 인기 선수 루이스 해밀턴 선수 등이 패독클럽을 찾았다. 해밀턴은 'F1의 타이거 우즈'라는 별명이 붙은 선수로, 연봉이 300억원에 달한다. 경기를 세 시간여 앞둔 시점이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고객들 앞에 손을 흔들어 보이며 경기에 임하는 각오를 말하고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피트로 내려갔다. 지난해 은퇴한 F1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 선수도 패독클럽을 찾아 한국 팬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또 사전 신청을 통해 피트 투어도 할 수 있다. 경기 직전, 피트 안까지 들어가 레이싱팀이 머신을 점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 중에는 감독과 선수, 팀원들이 주고받는 긴박한 교신 음성을 엿들으며 관찰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시속 300㎞로 내달리던 선수가 감독에게 "브레이크 온도가 어떤가요?"라고 묻고, 감독이 "과열돼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는 지시를 내리는 순간을 함께 나누면, 마치 한팀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