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박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특허 기술료로 8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ETRI에 근무한 지 4년도 안 돼 외국계 IT 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달리 근속 연수 20년이 넘은 B 박사는 기술료 수입은 시원찮지만 늘 좋은 평가를 받는다. 돈이 안 되는 기술이라도 우선 특허를 내기만 하면, 나중에 포기하더라도 인사고과 점수와 보상금을 두둑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실효성과는 무관한 양(量) 위주로 특허를 내다 보니 5년 이상 활용되지 않는 '장롱 특허'가 5개 중 1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산업체 기술 이전(移轉)에 성공한 핵심 특허를 개발한 젊은 연구원들은 줄줄이 연구기관을 떠나고 있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연구개발(R&D) 투자'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유승희(민주당) 의원은 21일 기초·산업기술연구회와 산하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부 출연연에서 보유한 미활용 특허가 6030개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활용 특허는 5년간 활용하지 않은 장롱 특허를 말한다.

24개 출연연의 특허는 3만563개로, 이 중 장롱 특허 비율은 19.7%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에너지기술연구원의 장롱 특허 비율이 각각 37.3, 29.1%로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장롱 특허의 원인은 양만 따지는 실적주의에 있다는 지적이다. 출연연 전체 특허의 40% 가까이 보유한 ETRI의 경우, 국내 특허 등록은 1건당 6점, 국외 특허는 12점이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특허 1건당 10만~20만원의 등록보상금도 받는다. 이날 국감에서 미방위 노웅래(민주당) 의원은 "2010년부터 올 6월까지 ETRI는 매년 1443개의 특허를 등록했지만, 포기 건수도 등록의 77%에 이르는 1088개였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런데도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할 젊은 핵심 인력은 계속 출연연구기관을 떠나고 있다. 이날 미방위 홍문종(새누리당) 의원은 "ETRI에서 2010년부터 지금까지 1억원 이상의 기술료 수입을 올린 연구원 41명 중 36.5%인 15명이 퇴직했다"고 밝혔다.

퇴직 연구원 15명의 평균 근무 연수는 9.4년이었다. 특히 그중 3명은 미국과 중국, 캐나다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정부 예산으로 남 좋은 일만 시켰다"는 비판도 나왔다. 현행법상 퇴직 연구원도 기술료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