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은 지난해 해외에서 3575억원을 벌었다. 11개 국내 은행이 거둔 해외 수익 9010억원의 40%에 달한다. 현대캐피탈의 자산 규모는 20조원 정도여서 11개 국내 은행의 자산 합계(1700조원)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도, 해외 비즈니스 경쟁력에서는 대형 은행들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바로 글로벌 시장에서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제조업의 등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른바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사로잡은 시장)의 활용'이다. 캡티브 마켓이란 '계열사 간 내부시장'을 뜻하는데, 계열사의 사업과 연계해 수익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 전략을 좁은 국내시장에서 사용하면 '독점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거래로 비판을 받지만,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취약한 우리 금융회사들이 확실히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캐피탈은 미국·중국·유럽 등에서 현대·기아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자동차 할부금융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캐피탈의 사례처럼 세계 일류 수준으로 올라선 제조업과 금융업의 동반자 관계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제품의 성격은 다르지만, 전자제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제조업체를 활용해 해외시장 본류(本流)에 뛰어드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의 해외 진출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금융, 'Made in Korea'를 동반자로 해외로 진출

그동안 캡티브 마켓은 한국 금융의 해외 진출이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였다. 우리나라 은행의 해외 지점은 교민과 유학생, 현지 진출 기업의 송금 업무 등 본류와는 한참 먼 보잘것없는 시장에서만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지의 본류 고객을 잡기 위해 캡티브 마켓을 활용하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지 직원 채용 등을 통한 현지화 노력과 한국식 서비스로 차별화를 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황유노 현대캐피탈 부사장은 "현대캐피탈이 단순히 현대·기아차와 동반 진출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성과를 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은행도 아닌 캐피탈회사가 유럽이나 미국에 나갔을 때 어떻게 보였겠느냐. 10년 이상 현지 은행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이 현대·기아차 고객을 대상으로 한 캡티브 마켓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것은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다.

현대캐피탈이 미국에 진출한 것은 1980년대였지만, 당시에는 캡티브 마켓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영업을 하지 못해 미국 현지 할부금융회사들에 현대차 할부금융 시장을 다 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현지 시장 상황과 미국인들의 금융 문화를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숱한 실패를 맛본 것이다. 황유노 부사장은 "현지 시장조사와 미국 소비자 성향 분석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2010년부터는 본격적 영업에 나서, 폭발적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미국법인 관계자는 "2009년까지만 해도 현대캐피탈을 통해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100명 중 17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엔 100명 중 59명꼴로 늘었다"며 "다른 나라의 할부금융사를 이용할 때보다 금리 등의 조건이 좋아 현대캐피탈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의 경우와 같은 캡티브 마켓은 선진국에서도 명품 대접을 받고 있는 최고급 LED TV, 양문형 냉장고 등 대형 소비재에도 적용 가능성이 있다.

하나금융그룹, 화교 겨냥해 중국 은행과 합작해 미국 등 진출 추진

개발도상국 금융 시장 진출은 우리 정부의 개발 지원을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 은행들은 최근 동남아와 남미 등 신흥국 개발금융 시장에서 일본 정부의 지원 사업을 배경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얀마 등에서 차관을 탕감해주는 조건까지 제시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대형 국책 사업의 사업권자로 선정되도록 돕고 있다. 이런 사업들에서 일본 금융회사들이 사업자금 대출 등을 맡아 사실상 동반 진출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캡티브 마켓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캡티브 마켓 연합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미국·캐나다 등 해외 진출 방안으로 중국 은행과 합작해 화교를 캡티브 마켓으로 삼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금융에 따르면 토론토시가 있는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의 경우 우리 교민은 9만8000명 정도인데 화교들은 50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금융의 해외 진출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금융회사 해외 법인장 초청 간담회에서 "금융산업은 미래 성장동력을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가 다음 달 중순쯤 발표할 '금융산업 비전'에는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 확대를 지원하는 각종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

계열사의 거래 고객을 상대로 다른 계열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A계열사의 전자제품 고객을 상대로 B금융 계열사가 상품 구매 할부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일거양득의 마케팅 효과를 낸다. 캡티브 마켓을 잘 활용하면 계열사들이 시너지를 내 그룹의 수익을 더 늘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