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이 사회공헌에 쓰는 비용이 지난해 5조원을 넘어섰다. 전라북도 한 해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다. 천문학적 액수에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평가는 냉랭하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해도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LG화학은 협력사 인제화학이 입주한 여수화양농공단지에 악취저감 시설을 짓기로 했다. 지난달 10일 인제화학 사업장 배출구에서 3000희석배수에 달하는 악취가 측정되자 후속 조치에 나선 것이다. 3000희석배수는 무취 공기로 3000배 희석해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악취방지법 기준치의 3배다.
지난 수년간 악취에 시달린 여수 주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농공단지 인근 주민들이 '악취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구토가 나올 것 같다' 등의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인근 화양고등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해결을 촉구했지만, 도의회 환경특별위원회가 꾸려져 조치를 취할 때까지 지역 주민 고통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한 여수 시민은 "대기업들이 지역사회와 공생한다는 취지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하지만 정작 사업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주민의 안전은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LG화학은 '시티즌 파트너'를 슬로건으로 여수·대산 등 사업장에서 농촌 일손돕기, 급식 봉사 등의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과 실상이 따로 노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14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기업들의 알맹이 없는 상생협력 사례가 줄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신세계그룹은 3년 전 중소기업청과 대·중·소 상생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기업형 슈퍼마켓(SSM) 11개를 운영하던 신세계 그룹은 지역의 중소 슈퍼마켓의 생계보호를 고려해 선별적으로 출점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소슈퍼마켓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신세계가 가진 물류 설비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 협약은 지난해 5월 공식적으로 파기됐다.
상생협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한 2012년 신세계는 이마트 에브리데이라는 이름의 상품공급점 99곳을 열었다. 2013년에는 241개를 추가적으로 출점해 본격적인 영업 확장을 했다.
전정희 민주당 의원은 15일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이마트 에브리데이와 같은 변종 SSM 상품공급점은 유통대기업의 간판을 무상으로 사용하면서도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법망을 피해간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신세계 그룹이 2010년 협약서 체결 이후 상생협력을 시도하거나 협약서 내용을 준수한 적이 없다"고 하며 "사실상 체결 당일부터 협약서를 파기한 셈이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사례로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2013년 부당 납품단가 인하행위 설문조사' 결과를 들고 나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동반성장 협약을 맺은 74개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 가운데 58.3%가 정당한 사유 없이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 의원은 동반성장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포스코가 지난 1일 우수기업에서 제외된 점을 꼽으며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 포스코는 동반성장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회의록을 사후에 가공하는 등 일부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것이 적발됐다.
지난 7월 제일기획이 실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기업이 사회공헌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8%뿐이었다. 국민 10명 가운데 3명의 공감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80.1%는 '기업의 생색내기용'을 그 이유로 들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대한 개념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일회성 기부나 협약 체결이 아니라 각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기획해 그 효과가 사회에 실질적으로 나타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