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 지음│이효숙 옮김│청림출판│768쪽│2만9800원

"당신이 자기 자신이 되려 하는데 모든 것이 그것을 막으려고 단합할 때,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 '자크 아탈리, 등대'의 저자 자크 아탈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인생의 등대가 된 인물 23명의 짧은 전기(傳記)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등대'는 인생의 길잡이를 뜻하는 오래된 표현이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23명 각자의 '열정'이다. 책에서 소개된 인물들은 모두 인생의 고난을 신념과 열정으로 버텨내서 크든 작든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공자는 전국시대에 군주들로부터 계속 버림받고 탄압받으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아 아시아 철학의 상징이 됐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달리 천동설을 굽히지 않다가 불경죄로 화형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머스 에디슨 등 유명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힐데가르드 폰 빙엔, 압델카데르 등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름도 다수 눈에 띈다.

책은 두껍지만(768쪽) 한 인물의 이야기는 많아야 40쪽 정도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가득 담기에는 짧은 분량일 수 있다. 저자는 선택과 집중에 충실했다. 인물의 '열정'을 보여주는데 집중했고 군더더기는 과감히 생략했다. 문장도 간결하게 쓴 편이다.

이 책은 인생 지침서에 더해서 역사서, 철학서 등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각 인물은 생몰년도 순서에 따라 목차에 배치됐다. 책을 읽다보면 희미하게나마 역사의 흐름이 보인다. 읽다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서 중세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인물의 인생을 기술할 때 세계적인 사건을 같이 기록해서 시야를 넓힌 것도 특징이다. 공자의 전기에서 "기원전 520년경 로마에서 로물루스 숭배가 제정되고 있을 때, 공자는 아직 노나라 군주의 조언자였다" 처럼 쓰는 식이다. 각 장의 처음과 끝에는 인물에 대한 저자의 평이 들어가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내용은 쉽지 않다. 철학 역사 예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 있어야 더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용기를 잃었을 때,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힘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젊은이들은 역사적 인물의 성공과 실패를 참고해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오래두고 천천히 읽을 것을 권한다.

저자인 자크 아탈리는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 중 한명이다. 철학 문학 예술에 정통할 뿐 아니라 프랑수와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대통령 특별보좌관직을 10여년 간 맡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를 지내는 등 현실 정치, 경제와도 가까웠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를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라고 평했다.

원제는 'Phares(등대) : 24 destins'로 프랑스에서는 지난 2010년에 발간됐다. 우리나라에선 저자가 인생의 등대로 삼은 24명 중 일왕(日王)인 '메이지(明治)'가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