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것을 아십니까? 1970년대에는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이태리포플러나 양버들, 미루나무 같은 버드나무 계열의 나무가 신작로에 많이 들어섰습니다. 멀리서 마을 입구를 알려주는 나무가 대부분 이 나무들입니다. 1980년대에는 공해에 강하고 잎이 넓은 백합나무나 버즘나무 계열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나무입니다. 1980년대부터 개발된 석촌호수에 있는 가로수가 바로 양버즘나무입니다.

1990년대부터는 병충해가 거의 없는 은행나무가 서울의 대표적인 가로수로 등장했습니다.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드는데다 은행까지 수확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나무로 여겨졌습니다. 이같이 시대마다 심어진 가로수가 달라 가로수만 봐도 언제 거리가 조성되고 활성화됐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신사동 가로수길 전경.

서울의 한 곳을 들여다볼까요? 압구정동을 대체하며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주목받는 신사동 가로수길은 마치 미국·유럽의 어느 골목을 그대로 떠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이곳에 심어진 가로수는 대개 은행나무입니다. 그러나 신사동 가로수길의 은행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성한 수형의 나무가 아니라 빗자루처럼 길고 곧게 자라는 형태입니다. 소위 피라미드 은행나무라고 불리는 ‘패스티기아타(Fastigiata)’ 품종의 은행나무입니다. 이 특이한 수형의 은행나무가 신사동 길의 가로수로 낙점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로수로 선택되려면 몇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먼저 도시의 대기오염이나 햇볕 등에 강해야 하고 병충해가 없어야 합니다. 당연히 사람에게 유해한 물질을 방출해서도 안 되겠지요. 또 미관상 아름다우면서도, 나뭇잎이 넓어서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면 좋습니다.

특히 가로수길은 상점이 밀집해 있는 곳이어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아야 하고, 가지가 옆으로 뻗지 않아 간판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신사동 가로수길 전경.

‘패스티기아타(Fastigiata)’ 은행나무는 가지가 넓게 뻗지 않고, 올곧은 수형으로 자라도록 개발된 품종입니다. 다만 문제는 가을에 떨어지는 은행 열매에서 풍기는 냄새입니다. 샛노랗게 물드는 단풍은 엽서에 붙여 날리고 싶을 만큼 아름답지만, 원치 않는 냄새에 후각이 괴롭힘을 당할 때면 낭만은 저만치 도망가고 맙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코를 쥐고 은행나무 밑을 멀리 돌아가는 행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은행나무인데도 열매가 없는 가로수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엔 은행나무의 암수 구분을 하지 못해 암·수나무를 구별없이 심었지만, 요즘에는 은행 열매의 악취 때문에 수나무를 심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