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사태 일파만파…피해자 집회

'동양그룹 부실 기업어음(CP) 쇼크' 사태는 금융 계열사를 사(私)금고화해 계열 부실기업 자금줄로 이용하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너 일가가 그룹을 살리기 위해 고객이 금융사에 맡긴 돈을 맘대로 이용하는 바람에 막대한 개인 피해자를 양산했다.

서울중앙지검은 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현재현(64) 동양그룹 회장과 정진석(56) 동양증권 사장을 고발한 사건을 특수1부에 배당,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날 곧바로 현 회장과 정 사장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 사각지대의 동양파이낸셜대부, 부실 계열사 자금줄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동양그룹은 동양증권뿐만 아니라 계열 대부 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도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했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지난 9월 ㈜동양과 동양시멘트에 CP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각각 350억, 100억원을 빌렸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이 돈을 포함해 각각 420억원, 290억원을 같은 달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에 빌려줬다. 당시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시중에서는 도저히 돈을 빌리기 어려운 부실 회사들이 계열 금융회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를 통해 재무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상상하기 어려운 연 6.5~9.3%대의 저리로 대출을 받아낸 것이다.

동양증권 노조는 8일 ㈜동양과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를 앞두고 동양증권에 계열사 기업어음 판매를 강요했다며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노조원들은 이 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자살한 직원의 유서를 낭독하며 시위를 벌였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증권이 자본금 10억원을 전액 출연해 1993년 만든 동양증권 자회사다. 대부 업체라 비리 제보가 접수되지 않는 이상 금감원의 감독권이 제대로 미치지도 않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동양이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레저 등에 직접 돈을 빌려주면 곧바로 '배임'에 해당할 수 있어, 중간에 동양파이낸셜대부를 집어넣어 계열사 간 돈을 돌린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부실 계열사 지원에 금융 계열사 총동원

동양자산운용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동양자산운용은 지난 2010년 1~3월 계열사인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회사채와 CP를 법정 한도(자기자본 대비 계열사 투자 비율)보다 31억원이나 초과해서 사들였다가 금감원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그 뒤로 동양자산운용의 40여개 펀드는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인 462억원어치까지 꽉 채워서 지난 3월까지 보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이 기피하는 투기등급의 동양 계열사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의 투자를 한 것이다.

동양증권 역시 자본잠식 상태인 계열사들의 CP를 집중적으로 팔았다. 또 2011년부터 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회사채 2조여원어치 가운데 무려 1조5000억원어치(약 74%)를 인수했다. 특히 동양증권은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부실이 본격화된 지난해에는 이들이 발행한 회사채 물량 가운데 무려 95%(8700억원 중 8300억원)를 소화했다.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은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이라는 '발권력'을 동원해 필요한 돈을 마구 찍어낸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私)금고화 현상'은 비단 동양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 들어 삼성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 중 삼성증권이 인수한 물량은 25.7%였다. SK그룹 회사채의 30.8%를 떠맡은 SK증권, 현대차 물량의 22.5%를 인수한 HMC투자증권, 동부그룹 계열사 물량의 32.5%를 인수한 동부증권 등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이런 식으로 계열사 채권 팔아주기를 하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라 '리스크 몰아주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지금처럼 그룹 증권사의 계열사 채권 소화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는 나중에 위기 상황이 왔을 때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우려가 있다"면서 "이번 사태처럼 계열 금융사가 부실기업을 연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